洪海里 詩 다시 읽기

짧은 시 읽기(『황금감옥』2008)

洪 海 里 2010. 3. 23. 13:51

<짧은 시 읽기(『황금감옥』2008)

 

 

 

저승


그곳이 좋긴 좋은가 봐

 

가지 않는 사람 하나 없는 걸 보면,



가 본 사람 아무도 없지만


간 사람 되돌아오지 않는 걸 보면.

 

 

빈 들


가을걷이 끝나고


눈 시린 하늘 아래 빈 들에 서면, 빈들


빈들, 놀던 일 부끄러워라


빈 들만큼, 빈 만큼 부끄러워라


이삭이나 주우러 나갈까 하는


마음 한 켠으로


떼 지어 내려앉는 철새 떼


조물조물 주물러 놓은 조물주의 수작秀作들!

 

 

시인

시도 때도 없어,
세월이 다 제 것인 사람

 

집도 절도 없어,
세상이 다 제 것인 사람

한도 끝도 없이,
하늘과 땅 사이 헤매는 사람

죽도 밥도 없이,
생도 사도 없이 꿈꾸는 사람.

 

 

시인은 누구인가

바람이 자고 가는 대숲은 적막하다

적막, 한시에 적막한 시가 나온다

시는 우주를 비추고 있는 별이다

시인은 적막 속에서 꿈꾸고 있는 자.

 

 

 

나의 시 또는 나의 시론


마음의 독약
또는
영혼의 티눈
또는
괴꼴 속 벼알
또는
눈물의 뼈.

 

 

겨울 빗소리


혼례만 올리고 시댁으로 가지도 못하고
과부가 된 어린 각시,

마당에 울고 있는
겨울 빗소리

차라리 까막과부望門寡婦라면 덜할까
청상靑孀이면 더할까,

온종일 듣고 있는
겨울 빗소리
 
 
지족知足


나무는 한 해에 하나의 파문波紋을 제 몸속에 만든다

그것이 나무의 지분知分이다

더 이상 흔들리지 않는다

나무는 홀로 자신만의 호수를 조용히 기르는 것이다

 

 

 

미루나무

1
반짝이는 푸른 모자

팍팍한 둑길

홀로

휘적휘적 걸어가던 아버지.


2
새로 난 신작로

차 지날 때마다

뽀얀 먼지 뒤집어쓴 채

멍하니 서 있던 아버지.

 

 

 

삼각산三角山


5월의 화산華山

백운白雲의 돛을 달고,

인수仁壽의 노를 젓는

만경萬景의 바다.


연둣빛 꽃으로 장식한

초록빛 풍류---,

화엄華嚴의 우주를 유영하는

거대한 범선 한 척.
 
 
 

곡우穀雨, 소쩍새 울다


곡우哭憂,

뜬눈의 밤을 하얗게 밝혀
가슴속에 슬픔의 궁전 하나 짓는,

칠흑 날밤 피로 찍어 쌓아올린 탑
하릴없이 헐어내리는---,

소쩍새 울다.

 

 

 

소한小寒 풍경


섣달 보름 소한날 둥근 달빛이 바삭바삭 푸르다.

서울쌀막걸리병의 몸통을 탁! 쳐서 기절시킨다.

찰랑찰랑 따른 술잔마다 별들이 벌벌 기고 있다.

하늘 위를 낮게 날던 새가 하릴없이 젖고 있다.

 

 

 

눈독들이지 마라
-누드 4

 


휴화산인
나는,

살아 있는 지뢰,
움직이는 지뢰밭이다

눈독들이지 마라
눈물 날라

나도 폭발하고 싶다
언젠가는.

 

 

* 위의 '남산제비꽃'은 http://blog.duam.net/jib17에서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