洪海里 詩 다시 읽기

짧은 시 읽기(『푸른 느낌표!』2006)

洪 海 里 2010. 3. 23. 13:50

<짧은 시 읽기(『푸른 느낌표!』2006)>

 

 

가을 들녘에 서서


 

눈멀면
아름답지 않은 것 없고
 
귀먹으면
황홀치 않은 소리 있으랴
 
마음 버리면
모든 것이 가득하니
 
다 주어버리고
텅 빈 들녘에 서면
 
눈물겨운 마음자리도
스스로 빛이 나네.

 

 

부드러움을 위하여

 
물이랑 연애하고 싶다
물 가르는 칼이고 싶다

 

이슬아침 댓잎에 맺힌 적요로
빛나는 물이 스미듯이 자르는,

 

칼에 베어지기 전의 작은 떨림
그 푸른 쓸쓸함 한입 베어물고,

 

길 지우는 배경물로 살아나듯
칼 지우는 투명한 물이고 싶다.

 

 

봄비 갠 뒤

 

마악

목욕탕, 나서는

 

열일곱

기인 머리

 

촉촉한

향香

 

연둣빛

갈증. 

 

 

오죽


동지섣달 깊은 밤

지은 소리로


석 달 열흘 내린 눈

잦힌 칠흑 빛


천 년을 울리고져

비우고 비운


동지섣달 긴긴 밤

숨죽인 가락.

 

 

먼지의 무게 

 

아무것도 아닌 것이 아무것도 아니다

천지가 먼지다, 먼지가 지천이다

보이지도 않는 것이 무게를 잡는다

그렇다

먼지는 있다, 무게다, 쌓인다

쌓이고 쌓여 하나의 존재를 이룬다

아무것도 아닌 것이 역사다

그것이 먼지의 무게다 .

 

 

도화桃花

 

저 많은 성기들

어디다

몰래

숨겨 두었다

봄이 온 걸

어찌 알고

발갛게,

빨갛게

고개 들고

발기하는가.

 

 

천지간에 절대 사랑 어디 있으랴

    

흙으로 빚어 천삼백도 열로 구은

 

천지간에 하나뿐인 도공의 혼백!

 

티 없는 그릇도 금이 가고 깨어져

 

다시 대지로 돌아가 흙이 되느니!

 

 

한로寒露 

 

지상의 가을이 익을 대로 익으면

의 손가락인

가장 아름답고 깨끗한 풀잎마다

물빛 구슬이 맺힌다

우주는 신의 장난감

구슬 속에서 굴러간다

또르르또르르

투명한 하늘이 높이 걸리고

모두가 무거운 몸을 뉘인다.

 

 

금란초金蘭草 

 

무등無等

산록


금빛

화관을 이고


황홀한 

화엄세계를


한 송이로


열고 있는

여자女子.

 

 

갈시

 

 

가을이 오자

탱글탱글 여무는

부사리의 불알

불알 속의 탱탱한 불꽃

불꽃이 담금질하는 창 끝

창 끝에 걸린 하늘

하늘의 쪽빛

쪽쪽쪽, 쪽쪽!

 

 

바다에 홀로 앉아


도동항 막걸리집 마루에 앉아

수평선이 까맣게 저물 때까지

수평선이 사라질 때까지

바다만 바라다봅니다

두 눈이 파랗게 물들어

바다가 될 때까지

다시 수평선이 떠오를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