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시 읽기(『비밀』2010) · 2>
속절
'한 삭朔만 같이 살자'
아니
'한 주週만'
아니
'하루만'
해도
웃기만 하던
꽃
모르는 새 다 지고 말았다
절도 속절인데
그래도
속절없다.
사랑에게
써레질을 잘 해 놓은 무논처럼
논둑 옆에 기고 있는 벌금자리처럼
벌금자리 꽃이 품고 있는 이슬처럼
이슬 속 천년의 그 자리 그냥 그대로.
사랑
번개 치고
천둥 울고
벼락 때리는
국지성
집중 호우,
또는
회오리바람.
꽃에게
아프다는 말 하지 마라.
그 말 들으면,
나도 아파 눈물이 진다.
아슬아슬
천 길
낭떠러지
보일락말락,
이파리
한 장으로 가린
꽃.
자벌레
몸으로 산을 만들었다
허물고,
다시 쌓았다
무너뜨린다.
그것이 온몸으로 세상을 재는
한평생의 길,
山은 몸속에 있는
무등無等의 산이다.
반성
네 예쁜 얼굴 너무 많이 봤구나
네 아름다운 목소리 너무 오래 들었구나
네 고운 마음 너무 자주 훔쳐 왔구나
네 고요 속에 너무 깊게 머물렀구나
아직도 깰 줄 모르는 나의 어리석은 꿈!
콩새야
콩새야
콩새야
느릅나무에 앉아만 있지 말고
콩밭에 가서 놀아라
겨울이 오기 전에
작두콩이나 한 알 물어 오너라
칼이나 하나 차고 오너라.
눈
누가 뜰에 와서 들창을 밝히는가
차마 문을 열지 못하고
마음만 설레고 있는
홀로 환한 이승의 한 순간.
귀향歸鄕
어제는 세이천洗耳泉에 올라 귀를 주었다
오늘은 세심천洗心泉에 가서 마음을 씻고
내일은 우이천牛耳川을 타고 고향에 가서
맑은 고을 무심천無心川에 마음을 띄운다.
* 세이천과 세심천 : 우이동에 있는 약수터
우이천 : 북한산에서 흘러내리는 내
무심천 : 청주 시내를 가로질러 흐르는 내
* 이제까지 내가 쓴 잛은 시(短詩)를 정리해 보았다.
가만히 살펴보면 어느 시기에는 짧은 시가 많고 어느 시기에는 거의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70년대 말에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그때는 생각이 많았던 탓인지 모르겠다.
1980년의 시집『바람 센 날의 기억을 위하여』에 수록된 짧은 시를 정리하지 못한 아쉬움이 있다.
이것은 차차 찾아서 수록할 예정이다.
이로써 1969년에 낸 첫시집『投網圖』로부터 2010년의『비밀』에 들어 있는 작품 정리를 마친다.
물론 의도적으로 뺀 것도 없지 않음을 적어 둔다.
- 洪 海 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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