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시 읽기(『비밀』2010) · 1>
5월
무슨 한이 그리 깊어 품을 닫는지
그리움만 파도처럼 터져 나오고
밀려오는 초록 물결 어쩌지 못해
임자 없는 사랑 하나 업어 오겠네.
만추
늙은 호박덩이만한 그리움 하나
입 다물고 귀도 접고 다 잠든 밤
추적추적 내리는 창밖의 빗소리
구진구진 홀로서 따루는 국화주.
나의 詩는
북소리 한 자락 베지 못하는
녹슬어 무딘 칼, 이 빠진 칼
그 옆에 놓여 있는
네 마음 한 자락 베지 못하는.
그물
어떤 자는
던지고,
어떤 이는
걸리고,
어떤 놈은
빠져나가는,
세상이라는
허방.
명창名唱
귀가 절벽이 될 때까지
목이 먹빛이 될 때까지
내가 폭포가 될 때까지
네가 칠흑이 될 때까지.
막막
나의 말이 너무 작아
너를 그리는 마음 다 실을 수 없어
빈 말 소리없이 너를 향해 가는 길
눈이 석 자나 쌓였다.
수세미
전생에 무슨 한이 그리 엮여서
한평생 몸속에 그물만 짜셨을까
베틀 위의 어머니,
북 주고
바디 치던
마디 굵은 손
나,
눈에 는개 내린다.
찰나
도화桃花 그늘에 앉아
술 한잔 하고 나니,
녹수청산綠水靑山 어디 가고
홍엽紅葉이 만산滿山,
찬서리 내리고
백설白雪만 펄펄 분분紛紛하네.
그리운 지옥 · 봄
서방님! 하는 아주 고전적인 호칭으로
산문에 들어서는 발목을 잡아 세워서
삼각산 바람소린가 했더니
사방을 둘러봐도 아무도 없고
꽃 속의 부처님만 빙긋이 웃고 있네.
새는 뒤로 날지 않는다
새가 나는 것은 공간만이 아니다.
새는 시간 속을 앞으로 날아간다.
때로는 오르내리기도 하면서~~~.
날개는 뒤로 가는 길을 알지 못한다.
신은 새에게,
뒤로 나는 법을 가르쳐 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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