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시 읽기(『봄, 벼락치다』2006) · 3>
장미, 폭발하다
가시철망
초록 대문 위
천하에
까발려진
저,
낭자한 음순들
낭창낭창
흔들리는
저, 저,
호사바치.
6월
초록치마
빨강저고리
다 걸친 채
감투거리하는
가쁜 대낮의
저 여자
내팽개쳐진
장미꽃.
소금쟁이
북한산 골짜기
산을 씻고 내려온 맑은 물
잠시,
머물며 가는 물마당
소금쟁이 한 마리
물 위를 젖다
뛰어다니다,
물속에 잠긴 산 그림자
껴안고 있는 긴 다리
진경산수
한 폭,
적멸의 여백.
한가을 지고 나면
기적도 울리지 않고 열차가 들어온다
한갓되이 꽃들이 철길따라 피어 있다
굴을 지날 때 승객들은 잠깐 숨이 멎는다
역사에는 개망초처럼 소문이 무성하다
기약 없이 열차는 다음 역을 향해 떠난다
꽃잎 지는 역은 장 제자리에 있다
봄이 오기까지 몇 년을 기다려야 한다.
첫사랑
1
얼굴이 동그랗고
눈이 큰 소녀
사과나무 가지마다
볼 붉히고 있다.
2
가슴속
환하고
황홀한
무덤 하나.
내소사 입구에서 전어를 굽다
전어 굽는 냄새에 집 나간 며느리가 돌아온다는,
가을에
내소사 입구
전어 굽는 냄새
왕소금 튀 듯하는데
한번 나간 며느리 소식은 커녕
단풍 든 사내들만 흔들리고 있었네
동동주에 붉게 타 비틀대고 있었네.
독
네 앞에 서면
나는 그냥 배가 부르다
애인아, 잿물 같은
고독은 어둘수록 화안하다
눈이 내린 날
나는 독 속에서 독이 올라
오지든 질그릇이든
서서 죽는 침묵의 집이 된다.
순리
매듭은 풀리기 위해 묶여 있다
치마끈이든
저고리 고름이든
끊으려 하지 마라
자르지 마라
매듭은 풀리기 위해 묶여 있다.
폭설暴雪 · 1
내 마음속 전나무길 눈은 쌓여서
밤새도록 날 새도록 내려 쌓여서
서늘한 이마 홀로 빛나라
빛나는 눈빛 홀로 밝아라
이승의 모든 인연 벗겨지도록
저승의 서룬 영혼 씻겨지도록.
악역
시커멓다고 욕하지 마라 연탄이다
울지 않는다고 눈물이 없겠느냐
더운 밥 한 그릇 네게 바치려
구멍마다 뜨거운 한숨 남몰래 뱉고
웃날이 들면 네게도 꽃을 피우려니
욕하지 마라 지금 시커먼 연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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