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독종毒種』2012

<시> 길과 시간

洪 海 里 2011. 5. 18. 04:33

길과 시간 

 

洪 海 里

 

 

길이란 발자국이 쌓는 잘 다져진 탑이다

앞으로 가며 쌓고 돌아오며 또 한 층 올린다

어제 위에 내일을 쌓는 시간이란 것도 그렇다

겨울 속에 여름이 있고 가을 속에 봄이 있듯

시작도 끝도 없는 푸른 생명일 뿐

아무리 쌓아올려도 낮은 자리는 낮은 자리

길이나 시간이나 높이가 없다

길은 길일 뿐이고 시간은 시간일 뿐인데 

우리는 길 위에서 부질없이 시간을 말한다

길은 발자국의 흔적이고

시간은 마음의 상처라서 늘 아프다

그래도 내가 너에게 가는 길은

풍경과 더불어 아름다운 곡선길이면 싶다

시간은 살아 있어 추억으로 꽃을 피우니

나는 너의 안 깊숙이 든 시간이라면 좋으리

뱀은 긴 직선의 몸으로 한평생을 곡선으로 긴다

하늘을 가는 새도 곡선으로 날고

과녁을 향해 날아가는 화살을 보라 

곡선으로 날아가 명중하지 않는가

직선은 곧고 반듯하게 죽어 있다, 해서

너에게 가는 길이 구불텅구불텅한 길이라면 

과거도 미래도 아닌 시간이라면 좋겠다

높이도 없이 높고 높아서

한평생 네가 보이지 않는 지금 여기.

 

- 시집『독종』(2012, 북인)

 

* 백작약 : http://blog.daum.net/jib17에서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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