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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그 모든 질곡을 통과한 인간은 어떤 맛일까? / 시집『독종』

洪 海 里 2012. 12. 25. 11:05

<서평>

 

그 모든 질곡을 통과한 인간은 어떤 맛일까?

- 洪海里시집『독종』(북인, 2012)

 

홍 예 영 (시인)

 

 

 

  시집『독종』을 읽어가자면 음악이 맴돈다. 거대한 흐름을 따라 펼쳐지는 우주의 소식은 베토벤이 청력을 잃는 고통 속에서 자연으로 돌아가 완성한『전원교향곡』을 닮았다. 우주의 궁극적 본질을 향한 명상은 '금강초롱, 매화, 매미껍질, 맥문동, 홑동백꽃' 등과 같은 시어에 담기어 오보에 클라리넷처럼 저마다의 색과 소리를 낸다. 그리고 마침내 고통을 이긴 예술가의 영혼의 모음으로 다시 탄생한다.

  상징의 숲에 대한 산책은 시인이 자주 사용하기도 하고 시선을 사로잡는 시어인, 자연경과 거문고와 그늘의 순서를 따랐다.

 

1. 저 바람의 노래를 읽으리라.

  시집『독종』은 시「만공滿空」에서 시작된다. 시인은 ‘내 마음대로 다 버리니 텅 빈 마음이 가득’ 하다고 전한다. 빈 마음의 시인은 산 책을 펼쳐주며 사색의 깊은 길을 안내한다.

 

 

산책은 산 책이다

돈을 주고 산 책이 아니라

살아 있는 책이다

발이 읽고

눈으로 듣고

귀로 봐도 책하지 않는 책

책이라면 학을 떼는 사람도

산책을 하며 산 책을 펼친다

느릿느릿,

사색으로 가는 깊은 길을 따라

자연경自然經을 읽는다

한 발 한 발.

     -「산책」전문

 

 

  시「산책」에서 시인이 읽어가는 것은 산 책, 즉 자연경自然經이다. 시인은 독자에게 금강경, 독경, 산경, 등등, 여러 모양의 수식어를 경 앞에 사용하여 궁극적으로 자연경의 완성도를 높이고 있다. 이 시어에서 먼저 느낄 수 있는 것은 자연에 대한 시인의 옷 여밈이며, 나아가 시인이 시의 길에서 마음을 닦는 시의 수도승임을 알게 한다.

  시인은 ‘부처도 절도 없는 깊은 산 속에서, 초롱꽃 밝혀 건’ 한 물건을 소개한다. 꽃의 얼굴로 다가든 시「금강초롱」은 금강경을 내걸고 시인의 ‘가슴속 눈먼 쇠북’이 울리기를 기다린다. 몸의 바닥인 시인의 발 역시 ‘술에 취해 정신을 잃어도, 입력된 산경표를 따라 좌우 산경을’ 구별한다. 발바닥은 산속의 높낮이를 알아「산경山經」 속의 화자를 흔들흔들의 속도로 집에 데려다 놓는다.

  경에 대한 묘사는 또 있다. ‘물속 암자에서 피워 올린’ 꽃은「수련睡蓮 그늘」속에서 ‘푸른 독경’을 한다. ‘소리 없는 해인' 에 사로잡힌 시인은 꽃의 속내를 짐작하기 위해 엎드려 귀 기울이고 산책에 동행한 독자 역시 걸음을 멈추게 한다.

  시인이 자연경에서 뽑아낸 대상들은 시인의 가슴속 공명통을 울린다. 시인은 안단테의 속도이다가 알레그로로 내닫는 울림을 배합하여 시집 전체에 일정한 높이의 음악을 맴돌게 한다.

  시「폭포」는 속도가 빠르다. 막무가내의 한 고집이 급하게 쏟아진다. 소리에 가까이 다가서니 ‘천 년 적막의 고승이 죽비를 내리치고’ 있다. 하얗게 죽어 다시 사는 것을 한마디 말씀으로 보여 주기 위해, 스님이 적막을 짓이겨 만든 말씀이 폭탄의 속도이다. ‘온몸으로 전신공양’을 하는 층꽃풀탑, ‘연보랏빛 꽃 방망이 하나씩 들고 꽃 몽둥이 되어’ 서 있는 맥문동 등의 자연물은 색색으로 살아나서 낮고 작은 음을 데려다 놓는다.

   자연경에 대한 시인의 글쓰기는 ‘자연은 사원이어서 거기서 살아 있는 기둥들에서 새어 나오는 말을 듣는’ 샤를르 보들레르의 시 「교감」과 비슷한 출발점을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시들은 각각 다른 시어로 독자에게 다가든다.

상징의 숲속에서 식물들이 화답하는 모습을 그린 시「우이동 솔밭공원」은 시인만의 언어가 어떻게 우주와 교감하는지를 보여주는 작품 중의 하나이다.

 

백년 묵은 천 그루 소나무가 방하착하고

기인 하안거에 들어 꼼짝도 하지 않는다

나무속 결 따라 신들의 궁전으로 가는 길

울려나오는 금강경의 물결도 숨죽이고 흐른다

수천수만 개의 푸른 붓으로 비경秘經을 새기고 있는

노스님의 먹물은 말라붙어 버렸다

땅속 천 길 이엄이엄 흐르는 천의 냇물이여

내 마음의 다랑논에 물꼬를 열어 다오

바람의 땅 낮은 곳을 따라 흐르는 온전한 물소리

잠깬 물고기 한 마리 날아올라

천년 세월을 면벽하고 나서 쇠종에 매달리니

바람이 와! 화엄華嚴의 춤을 춘다

무거운 침묵으로 빚은 야생의 시편들

눈 밝은 이 있어 저 바람의 노래를 읽으리라

귀 밝은 이 있어 저 춤을 들으리라

마음 열고 있는 이 있어 물처럼 흘러가리라

저들 나무속에 숨겨진 비경을 나 어이 독해하리

잠깐 꿈속을 헤매던

속눈썹 허연 노스님이 땅바닥에 말씀을 던져 놓자

시치미를 뚝 떼고 있던 소나무들

몸 전체가 붓이 되어 가만가만 하늘에 경을 적고 있다

잠 못 드는 비둘기 떼 파닥이며 날아오르다

소나무 주위를 푸르게 푸르게 맴돌고 있다

북한산이 가슴을 열어 다 품고 있는 것을 보고

구름장 하얗게 미소 짓고 소리없이 흐르고 있다

이윽하다

좀 좋은가.

  -「우이동솔밭공원」전문

 

 

  나무 속 결을 따라 신들의 궁전으로 가는 길의 시인은 금강경의 물결, 푸른 붓, 비경秘經, 먹물, 화엄華嚴, 속눈썹 허연 노스님과 같은 시어로 우주의 말씀을 받아쓴다. 여시아문如是我聞의 세계를 펼쳐간다. 우리는 여기서 서양의 철학자 니체가『선악의 저편』에서 말한 ‘문법 구조가 철학을 낳는다’는 말을 기억해 볼 필요가 있다. 그 이론을 더 해석해 보자면 우랄 알타이 언어권과 게르만족이나 이슬람교도의 언어권은 문법 구조가 달라 서로 다른 철학적 사색을 펼칠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를 이어갈 수 있다.

「우이동 솔밭공원」의 화자가 보는 자연경은 확실히 그들의 언어권이 펼친 상징주의 언어와 다르다. 상징주의의 영향 아래에 있었던 보들레르는 앞에서 인용한 시 「교감」에서 색체와 소리 속에 용연향, 안식향, 훈향 같은 향기를 섞어 상징의 세계를 펼치고, 이와 달리 시인은 푸른 붓으로 염결 정신을 간직한 선비의 길을 이어 놓고 있다.

  상징의 숲을 통과한 동서양의 시들을 비교해 보는 이러한 작업은 시어에서 특별히 차이를 보인다. 이러한 차이를 구별해 보는 작업은 각각의 시인이 쓴 작품에 대한 이해를 더해주고 독자의 시야를 넓히는데 도움을 줄 것이라 여겨진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주의 소식을 접하는 일에 재미를 더할 것이다.

  시집 끝에 수록된 「시의 길, 시인의 길」에서 시인은 선비란 ‘책과 거문고와 칼’을 곁에 두고 사는 시인是人, 즉 ‘바른 정신을 가진 사람’이 되려고 하는 사람이라고 하였다. 바른 정신을 가지려고 하는 시인은 왜 거문고를 그토록 가까이할까? 살펴보도록 하자.

 

 

2. 귀먹은 거문고 하나

  동양적 세계관에서의 음악은 자연과 인간, 우주적인 질서와 조화를 이루며 뭇 짐승들이 이에 맞춰 춤을 춘다는 바탕을 가졌다. 시인이 말하는 거문고에 대한 이해를 위해 실제의 거문고를 찾아보았다. 거문고는 상자 식으로 짠 공명통과 공명통 위에 고정한 열여섯 개의 괘와, 6개의 줄, 줄을 받치고 있는 세 개의 안족 또는 현주絃柱, 그리고 손에 쥐고 연주하는 술대로 이루어져 있다.

실제의 거문고에서 우리는 공명통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시인이 가슴속에 품은 그것은 거문고가 가진 공명통의 역할과 닮아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 시집 곳곳에 배치된 악기들 역시 ‘저절로 울어 줄’ 공명통의 상징임을 알 수 있다. 자연과의 교감을 일으킬 때마다 깊고 그윽한 소리를 내는 역할은 거문고의 공명통을 닮아 있다 하겠다.

  그리고 거문고 소리를 듣기 위한 마음가짐 역시 참고하는 것이 좋겠다. 수도승들은 거문고 소리를 들으려면 줄을 팽팽하게도 느슨하게도 하지 말아야 한다는 원칙을 귀감으로 마음을 닦는다고 한다. 시의 길을 가는 시인 역시 자연과의 공명을 위해 팽팽하게도 느슨하게도 하지 않으려는 마음가짐을 보인다.

그래서인지 시인은 시의 행간을 조절하는 부사어를 유달리 많이 사용하고 있다. '느릿느릿, 한발한발, 휘적휘적, 흔들흔들' 등의 시어, 그리고 시의 제목에서도 쉽게 '넉넉낙낙, 덤덤담담, 망망, 족족, 쉿!' 등의 부사어를 찾아볼 수 있다. 이러한 부사어들은 속도가 있어 시 전체를 음악으로 다시 태어나게 하는 역할을 돕고 있다.

 

늦은 가을날

유방도 심장도 자궁도 다 버린

앙상한 몸 퀭한 가슴에 찬바람이 와 젖는

폐허에 배를 대고 십팔 박十八泊을 했다

나도 집처럼 금 가고 이 빠진 늙은 그릇

한평생 채웠어도 텅 빈 몸뚱어리였다

집도 비어서야 비로소 악기가 되었다

바람이 지나가면 노랠 부르고

비 오는 밤에는 거문고 소리로 울었다

 

달밤에도 잘 보이던 것들이

창문을 다 떼어내니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간 굽고 꺾이면서 틈새를 날리고

집은 얼마나 많은 곡과 절을 염장했을까

하잘것없는 것들!

쓰잘데 없는 것들!

보잘것없는 것들!

 

버리고 비워내며

아직 태어나지 않은 오래된 집을 위하여

나는 또 얼마나 많은 질곡桎梏에 매이고 있는가

30년 만에 집수리를 하면서.

 -「집을 수리하며」전문

 

 

  인용한 시「집을 수리하며」에서 화자는 ‘곡과 절을 염장해’ ‘바람이 지나가면 노랠 부르고, 비 오는 밤에는 거문고 소리로 우는’ 오래된 생명체 하나를 선보인다. 그리고 화자는 낡은 집처럼 ‘질곡桎梏에 매였다가 버리고 비워내기’를 통해 아직 태어나지 않은 시의 집을 꿈꾼다. 이 시의 내용은 서두의 시 「만공滿空」과 그 흐름이 비슷함을 볼 수 있다. 마치 도돌이표처럼 ‘하잘것없고 쓰잘 데 없고 보잘것없는 것들을 버려 텅 빈 마음이 가득한’ 집을 묘사해 「만공滿空」에서 보여준 화자의 마음 상태를 다시 담아내고 있다.

  ‘바보처럼 안고 살았던 질곡桎梏을 비워내는 일’은 그러나 한순간에 쉽게 이루어지는 작업이 아니다. “신작『비밀』로 돌아온 그에게 이 시대의 시를 묻”는 형식「시를 쓰다」를 보면 시인은 40년 동안 새벽 3시면 어김없이 눈을 떠 시가 아닌 시를 써왔음을 보인다.

  ‘절[寺]에 들어가 경도 외지 않고 날[日]만 쓰니 말씀[言]이 남아 된 것이 시였다는 고백을 하고 있다. 시인은 40년을 말의 절에 스스로를 가두고 ‘천신千辛과 만고萬苦의’ 길에 ‘귀먹은 거문고 하나 세워놓은’ 것이다.

  ‘현간絃間을 읽어’ ‘행간行間에 거문고 소리’를 듣는 일이 40년간 되풀이되었으니 시인의 글쓰기는 감정의 흐름만으로 시를 쓰는 보통의 글쓰기와 당연하게 차이를 보인다. 천신만고의 세상에서 일생을「시의 길, 시인의 길」을 걸어온 시인의 시에는 ‘정신이 들자 이내 날아올라, 제 세상을 향해 가는’「추락」속의 새, 금시조의 마음가짐이 살아 꿈틀거린다.

 

 

악을 써도 시는 써지지 않는다.

악이 악이 되어야 시가 선다.

 

날것인 말로 꽃도 달고 열매도 맺게 하라.

그물에 꽂힌 은빛 멸치의 몸부림으로

네 뜰에 꽃이 피거든 안부 전해 다오.

풀에 나무에 열매 달리거든 손 모아 절하거라.

 

마음 하나 늘 나뭇가지에 걸어 두고

함부로 몸 열어 밖으로 뛰쳐나오지 않게 하라.

네 입맞춤으로 눈 번쩍 뜨이는 봄날이라고

허공대천을 마구 내닫지 말거라.

- 「무극장락無極長樂」 부분

 

 

  인용한 시에서 화자는 ‘악이 악이 되고, 날것인 말로 꽃을 달기 위해’ ‘마음 하나 늘 나뭇가지에 걸어 두고’ 있다. 이 ‘마음 하나’는 거문고의 다른 표현임을 산 책에 익숙해진 독자라면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시인은 오랜 연마와 고통 속에 얻어지는 그늘을 사랑한다. ‘질곡을 넘어서 내는 거문고 소리’에 담긴 수리성 닮은 그늘을 아낀다.

 

 

3. 그늘

  시인이 말하는 그늘에 대한 이해를 위해 판소리에서 말하는 시김새를 찾아보았다. 판소리에서 ‘시김새가 좋다'는 말은 그늘이 있어 예술적인 멋이 풍부하다는 의미이다. 여기에서의 그늘은 소리의 바탕에 거느리는 웅숭깊은 여유, 심오한 멋을 이르는 말로 뙤약볕 아래, 거목의 그늘에 앉아 있을 때 느끼는 은은함, 삽상함, 청량감 같은 멋과 여유를 포함한다.

  시인이 말한 ‘질곡을 이기어 낸 거문고 소리’는 시김새가 좋다는 표현으로 바꾸어 볼 수 있다. 시인의 그늘에 관한 이야기는 여러 시에서 보인다. 시「그늘과 아래」에서의 그늘은 ‘무두질 잘해 놓은 투명한 가죽’이며 ‘그늘에서 막걸리를 먹여야 좋은 소리가 나는’ 북에 있다. ‘그늘의 소리가 배어’ 있는 이 악기는 항상 얻어맞아야 하는 슬픈 운명을 지녔다. 그러나 시인은 슬픔을 넘어선 희망의 소리를 들으며 ‘늘 그늘이고 아래에 있고 싶다’는 소망을 보여준다.

  또한「수련睡蓮 그늘」에서 시인은 ‘그늘이란 너를 기다리며 깊어지는, 내 마음의 거문고 소리’라고 말한다. 그늘은 이 시에서 수련 아래 우주가 열어놓은 비밀 문의 역할을 하고 있다. 한 송이 꽃의 그늘에서 ‘푸른 독경의 소리 없는 해인海印을 읽는’ 시인은 서늘함을 넘어서 환한 우주의 길을 열어 보인다.

  나아가 시인의 그늘에 대한 이상향은 시「참나무 그늘」에서 살아 움직임을 볼 수 있다.

 

 

그가 단상에 앉아 있을 때

마치 한 권의 두꺼운 책처럼 보였다 한다

한평생 시만 덖고 닦다 보니

육신 한 장 한 장이 책으로 엮였는지도 모른다

한마디 말씀마다 고졸한 영혼의 사리여서

듣는 이들 모두가 귀먹었다 한다

자신이 쓴 시를 스스로 풀어내자

강당 안은 문자향文字香으로 그득했거니와

몸이 뿜어내는 서권기書券氣로 저녁까지 환했다 한다

평생을 시로 살았다면

말씀마다 꽃이 피고 새가 울어야 한다

그는 평생 모래바람 속을 묵묵히 걸어온 낙타였다

길고 허연 눈썹 위에는 수평선이 걸려 있고

얼굴에는 잔잔한 미소가 달빛처럼 흘렀다 한다

그가 생각에 잠겨 잠시 눈을 감자

먼지 한 알 떨어지는 소리가 천둥 울 듯 요란했다

다시 입을 열어 말을 마쳤을 때

방안에는 오색영롱한 구름이 청중 사이로 번졌다고 한다

그의 시는 오래된 참나무 그늘이었다

사람들이 몰려들어 지친 걸음을 쉬고 있었다

주변에는 꽃이 피어나고 새들이 지저귀고 있었다 한다.

-「참나무 그늘」 전문   

 

 

  화자는 인용한 시 참나무 그늘」에서 ‘문자향文字香과 서권기書券氣’를 몸으로 뿜고 ‘말씀마다 꽃이 피고 새가 우는’ 사람을 선보인다. 그러한 사람의 시가 오래된 그늘이 되어 ‘사람들이 몰려들어 지친 걸음을 쉬고’ ‘주변에는 꽃이 피어나고 새들이 지저귄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시의 주인공은 앞에서 말한 새, 금시조의 모습을 닮았다. 그러나 그것에 닿는 일이 어찌 쉽기만 했었겠는가?

 

 

4.

  참나무 그늘 같은 시를 꿈꾸며「시의 길, 시인의 길」을 가는 시인은 시에 대해서 많은 사색의 길을 이어간다. 시 「청명시편明詩篇」에서 ‘우리가 꿈꾸는 시는 어떤 것인가?’를 묻는다. 시인은 ‘꿈 깨는 시도 절절한 절정도 만만한 바닥’도 아닌 청명한 시를 이야기한다. 또한「편지」를 통해 절정이란 한 점, 찰나일 뿐이어서 절정에 이르기 전 내려오기를 권한다. ‘죽어 침묵을 내려놓은 나무’를 이야기하는 시인이 길 한 모퉁이에 심어둔 ‘시의 침묵이 피우는 맹목의 꽃’은 그 묵묵함으로 독자를 이끈다.

 

 

침묵만한 말이 세상에 없다

바람이 울지 않듯,

나무는 한평생 말을 사약으로 삼키며

살아서 꽃을 세우고

죽어 침묵을 내려 놓는다

우리의 말도 꽃처럼 허허로울 때

말은 열매를 허공에 단다

그 열매가 침묵이다

맹목 같은 시의 침목이 된다

침묵은 천년 묵은 침향이다.

 

침묵은 보석처럼 빛난다

침묵은 호수처럼 바닥이 보이지 않는다

말로도 못할 일이 있다

완전한 불완전,

그것이 시의 절대자유, 생명이요, 꽃이다

시에는 침반이 없다

가는 길이 천양지간 사방이다

시는 침묵이 피우는 맹목의 꽃

그 열매가 향기로 너에게 간다

맹물의 시다.

-「침묵 1」 전문

 

 

  ‘한평생 말을 사약으로 삼키며, 살아서 꽃을 세우고, 죽어 내려놓는’ 나무의 침묵, 그것을 닮은 시. ‘침묵이 피우는 맹목의 꽃’ 그 모든 것을 담아 맹물이 되는 시는 독자에게 어떤 향기로 다가갈까. 맹목의 꽃의 향기 앞에 산책은 아주 느린 걸음이 되고 있다.

이제 시집 『독종』과의 산책을 끝내려 한다. 나는 시어 독종이 시의 길에 들어선 가섭에게 보이는 화두라는 생각을 해본다. 세상에서 제일의 맛은 독이고, 물고기 가운데 가장 맛이 좋은 놈은 복어이며, 가장 아름다운 색깔의 버섯이나 단풍은 모두 독이 있다. 독침과 독화살로 사물을 단번에 시들게 하는 인간은 왜 맛이 없는가?

  시「독종」의 여운은 말하자면 거문고의 공명을 유도하는 장치 같은 것으로 시집을 덮는 독자에게 다다를 것이다. ‘인간은 왜 맛이 없는가?’ 시집 전체를 휩싸고 도는 느슨하지만 팽팽한 긴장감, 자연경의 현간絃間을 읽어 행간行間에서 들리는 거문고 소리가 그늘을 환하게 만들어 독자의 공명통에 닿을 것이다. 낮은 목소리 하나 맴돈다.

 

  그 모든 질곡을 통과한 인간은 어떤 맛일까?

                                                                                - 월간《우리詩》(2013.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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