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시가 변용詩篇

휴전선

洪 海 里 2013. 1. 17. 05:21

 

 

휴전선


 

홍해리(洪海里)

 

 

누가
우리의 눈을 가리웠고
지금도 가리고 있는가

그것은
바로 너와 나
우리가 아닌가

바람은 바람대로 하늘에 구름꽃 피우고
물은 물대로 강으로 바다를 이루고 있는데

우리 마음이야 어디
하늘 땅 가려 서는가

단지 검은 안개가 망막을 덮어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을 뿐

밤이요 꿈이요
한밤중 꿈 깊은 꿈 속인가
새벽은 언제 와 홰를 치는가

젊은 병사들의 시퍼런 눈썹이 떠가는
임진강 물줄기 따라
잊혀진 노랫소리 바람 속에 되살아나고

이름 모를 풀꽃은 지상을 점령하고
이름도 잊은 고기 떼 강물 속에서
새들은 하늘에서
저마다 반짝이는 목숨을 세우지만

휴전선이 어드메뇨
비무장 지대가 무엇이뇨
녹슨 철길은 어디로 달려가고 있는가

돌아오지 않는 다리를 건너
155마일 철책을 지나
북방 한계선을 넘어

느김표처럼 맞아야 할 곳
국경 아닌 국경을 넘어
가야 할 그 산하

그곳은 어디
순백의 나라, 깃발 없이 만나는 희망의 나라
사랑의, 꽃의, 햇빛의, 아아, 눈물의 나라
징소리 지잉징 울리던 그곳, 아직도
말씀 속에 살아 아침 햇살로 반짝이는 그곳
촛불처럼 가슴에 타고 있는 나라
그곳이, 그곳이 어디인가

완충지대의 순한 눈의 노루야 토끼야
강물 속 유유한 메기야 잉어야 
아니면 이름 모를 푸나무야

누가 우리의 눈을 가리우고 있는가
누가 우리의 가슴에 못을 박았는가
묻지 말자

그것은 바로 우리
두 동강 난 몸뚱어리 다시 잇고
산산이 뿌려진 뼈와 살과 피----
휴전선, 그 이름 지울 자

꿈으로 마음으로 아니라
우리의 몸으로 건너고 지나고 넘어서
만나, 부등켜 안고 눈물범벅이 되자
우리 몸으로, 몸으로 하나가 되자.

- 시집『난초밭 일궈 놓고』(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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