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시가 변용詩篇

고무신은 추억을 싣고 아직도 가고 있다

洪 海 里 2013. 1. 17. 05:18

 

 

고무신은 추억을 싣고 아직도 가고 있다

 

 

洪 海 里

 

 

1
지상의 이 바다
인생이란 화물을 적재하고
아무리 무거워도
가라앉지 않는
한 쌍의 거룻배
이물칸 고물칸
물이 가득 차 올라도
침몰하지 않는 배였다.

2
비오는 날이면
나무잎새들은 엉덩이를 까고
초록빛으로 밝게 웃고 있었지만
밤마다 미꾸라지 날개를 타고
막무가내 미끄러지며
빠져나가려 바둥거렸다
온몸이 젖어 죽어 있어도
저녁 불빛은 따스하기만 하고
먹어도 먹어도 허기지던 시절
달구지 덜거덕거리는 소리
저문 들녘에서 돌아오는 왁자한 발자국
고무신 끄으는 소리.

3
세상은 매끄럽게 세월을 타지만
끈끈하게 살리라
다짐하는 흰옷, 흰옷들
개울에서 손으로 움켜
검정고무신에 담았던
송사리 미꾸라지 피라미 버들붕어
돌고기 납줄개 모래무지 각시붕어
반짝이는 맑은 물소리
푸른 하늘에
얼굴을 비추어 보고 있었다.

4
지금도 배는 바다에 떠 있다
보우, 보우! 뱃고동 보얗게 내뿜으며
바다, 그 유년의 물살을 가르며
가고 있다, 난바다로
인생이란 화물을 적재한
거룻배 한 쌍
난바다로 난바다로 지금도 가고 있다.

 

- 시집『난초밭 일궈 놓고』(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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