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화 및 영상詩

<시> 입춘立春

洪 海 里 2014. 2. 4. 05:09

 

*그림은 http://cafe.daum.net/yesarts에서 옮김.

 

 

입춘立春

洪 海 里

 

 


설악엔 눈꽃이 황홀하고
제주엔 이미 매화가 피었다 한다.

남이 잘 되는 꼴 못 본다고
동장군의 칼날이 번쩍이고 있다.

촛불도 꺼질 때, 반짝! 하듯
꽃이란 찰나의 유성으로 지고 말지만,

그 속에 잠든 영혼을 위하여
겨우내 부푼 양수가 터지고 있다.
                                                     (2006. 2. 6. 고대병원에서)

 

 

 

  • 2006.02.07. 05:56.
    지난 여름의 삼복더위를 고대 구로병원에서 시원하게 지내고
    이번에는 입춘 추위를 그곳에서 따뜻하게 지내고 돌아왔습니다.
    낮엔 병실 문을 다 열어놓고 지내는데 오시는 분들마다 밖이 무척 춥다고 해서 한번 나가봤습니다.
    그러나 그 추위 속에 이미 봄이 오고 있었습니다.

     

  • 2006.02.11. 11:15
    바람이 찬 듯해도 내린 눈은 녹고 있지요.

    그 바람 속에 이미 봄의 기미가 느껴집니다.
    혹한을 이긴 송백은 꿋꿋하지만, 우리집 마당의 烏竹은 금년에도 이파리가 다 얼어 허옇게 말랐습니다.

    그러나 봄이 무르익으면 죽순이 죽죽! 솟아오를 걸 생각하고 견뎌냅니다.

    곧 꽃소식이 화사하게 전해질 겁니다.

     

    * 2012. 01. 09. (월)

    엊그제 이미 소한도 지났고 21일이면 대한이고 내달 4일이 입춘이다.

    입춘을 기다리며 추위를 녹인다.

    몇 해 전에 쓴 '입춘 추위'를 다시 올려 놓고 봄 소식을 가다려 본다.

     

  • * 2013. 2. 4. (월)

    오늘이 입춘인데 새벽에 문을 여러 보니 눈이 한 자나 쌓였다.

    어제 두 번이나 눈을 쓸었다.

    우이동 골짜기에 눈이 이렇게 엄청나게 쌓인 것은 이곳에 사는 지 40년 만인 듯하다.

    올해는 두루두루 풍년이 들라나 보다.

    시인들에게는 시풍년이 들기를 바라고 싶다.

     

    마당의 눈을 어느 정도 치우고 큰길까지 길을 내고 들어오니 온몸이 雪浴을 한 듯 땀에 젖었다.

    기분은 시원하고 상쾌하기 그지없다.

    우이동솔밭공원의 천 그루 소나무나 만나러 나가야겠다.


    * 2014. 2. 4.(화)

    그간 포근하던 날씨가 어제부터 기온이 급강하, 오늘은 영하 10도까지 내려간다고 한다.
    바로 입춘 추위의 맛을 보여 주고자 하는 자연의 뜻이다.
    입춘을 맞아 이곳에 오시는 모든 분들께서 대길하고 만사 형통하시길 빈다.
    - 隱山

     

     

     

     

    입춘立春

     

    洪 海 里

     

    겨우내 조용하던 햇살이

    화살을 쏘아대기 시작한다

    깜짝 놀란 강물이

    칼날을 번쩍이며 흘러가고

    죽은 듯 움츠려 있던 나무들이

    무거운 잠을 눈썹 끝에 달고

    연초록 깃발을 꽂으며

    시동을 걸고 있다

    새들도 솜털깃을 털어내며

    아름다운 전쟁 준비에 한창,

    문득 문 열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

    타인도 정다운,

    죄 될 것이 없는

    그리운 남쪽 나라

    멀리서 오는 이의 기침소리가 선다.

     

     

    한잔술 · 立春

    洪 海 里


    새싹을 끌어올리는
    잔잔한 햇살의 울력,
    침묵의 계절은 가고
    말씀으로 빚은 유정한 소식 없어도
    기막힌 일 아닌가
    아른아른 아지랑이 서로 홀려
    살아 있는 것들 떠나고 돌아오고,
    한잔술에 기운을 돋우고 나면
    폭군의 광기와 집착도 별것 아냐
    뜻대로 되는 게 없다고
    따뜻한 남쪽만 그리워하랴
    어차피 삶이란 비수의 양면,
    보라
    지금 여기 머리 내미는
    싹싹한 자연을!

    (2005)

     


    * 福壽草 : http://blog.daum.net/jib17에서 옮김.

    * 꽃말 : 동양에서는 '영원한 행복(永遠的幸福)'이고 서양에서는 '슬픈 추억(悲傷的回憶)'이며,

    영명은 pheasant's eye(꿩의 눈)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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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겨우내 조용하던 햇살이/ 화살을 쏘아대기 시작한다/ 깜짝 놀란 강물이/ 칼날을 번쩍이며 흘러가고/ 죽은 듯 움츠려 있던 나무들이/ 무거운 잠을 눈썹 끝에 달고/ 연초록 깃발을 꽂으며/ 시동을 걸고 있다.' (홍해리의 '입춘' 중에서)

    매서운 북서풍이 잦아들고 해의 화살이 쏟아지면 대지는 다시 살아나기 시작한다. 강물이, 나무가 봄의 시동을 걸기 시작하는 이즈음에는 온기(溫氣)를 가진 모든 것들에 연분을 느껴도 아무런 죄가 되지 않을 것이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이야기다. 곡식 여신의 딸을 지옥의 신이 보쌈해 갔다. 딸을 잃은 슬픔에 곡식 신이 분노했다. 모든 식물이 말라 죽기 시작했고, 가축들도 떼 지어 죽어나갔다. 문제가 심각해지자 다른 신들이 나섰다. 여섯달 동안은 딸이 엄마와 살도록 하고, 나머지 여섯달은 지옥 신과 사는 것으로 매듭지었다. 이때부터 딸이 땅으로 돌아오는 봄이면 죽어있던 만물이 살아난다고 한다.

    북아메리카 인디언은 입춘 무렵에 '죽은 자를 위한 제의(祭儀)'를 벌인다. 죽은 자를 불렀다가 되돌려 보내는 의식이다. 죽은 자를 표상하는 젊은이가 망자(亡者)의 춤을 춘다. 그 다음 청년을 마을 밖으로 쫓아낸다. 추위와 어둠 속에 숨어 있던 망자를 밖으로 끌어내 쫓아내는 상징 의식이다. 따뜻함과 밝음의 봄이 오기를 소망하는 제의라 할 수 있다.

    우리네에게도 입춘 즈음에 "귀신은 밖으로, 복은 안으로"를 외치며 콩을 던지는 풍습이 전해온다. 죽음을 가져온 겨울 귀신은 물러가고 봄의 생명이 풍성한 축복을 희구하는 것이다. 이처럼 모든 문화권에서 봄은 생명력이며, 밝음과 따뜻함이며, 풍성한 소망과 축복이다.

    휘영청 밝은 보름달을 바라보며 풍요와 건강을 기원하는 대보름날(2월 9일)이 내일 모레로 다가왔다. 이날만은 추위로, 경제 한파로 옹송그렸던 우리 모두의 가슴이 활짝 펴졌으면 좋겠다. - 조선일보 (2009. 2.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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