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바람도 구멍이 있어야 운다 』2016

<시> 샘을 품다

洪 海 里 2016. 4. 16. 05:09

 

샘을 품다

 

洪 海 里

 

 

 

명절 때가 되면

마을 장정들이 모여 샘을 품었다

샘의 눈이 흐려지면 안 되기 때문이다

찰랑이는 물을 다 품어내고

물로 몸을 치고 다시 물을 품은 샘

새로 들어와 안긴 하늘도 새물내 난다

우리도 마음이 흐려지면

가슴에 하늘샘 하나 품을 일이다

가끔은 우두커니 서서

그 깊은 물속을 물끄러미 들여다봐야 한다

오직 채우기 위해 솟아오르는 물

아무리 퍼내도 표나지 않는 물

그러니 비움과 채움이 다르지 않다

우물진 네 뺨에 맑은 물 넘치도록

우물을 품어 가슴 물꼬에 젖을 댈 일이다

그래야 꼬물대는 정신도 살아 서는 법

빈 속에 물이 차면 밤마다 별들이 내려왔다

새벽녘 두레박 오르내리는 소리

장독대 정화수에 아침이 빛났다.

 

 - 시집『바람도 구멍이 있어야 운다』(도서출판 , 2016)

- 《불교문예》2013. 여름호.(제61호)

 

<감상>

새벽 다섯 시!
희끄무레 밝혀지는 아침이 장독대 정화수에 내려 빛을 품는다. 덩달아 활짝 웃으며 깨어나는 봉선화꽃 피는 소리!
아주 어릴 적, 아침이면 우물물 길어 아침을 지으시던 어머니의 정지문 여는 소리가 나의 정신을 깨우곤 했다

'샘을 품다!'
이 시를 읽는 동안 꿈결처럼, 아련한 추억영화 한 장면처럼 가난한 삶의 추억이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내 가슴의 샘물을 일렁이게 한다

해마다 명절이면 동네 장정들이 마을 공동 우물을 품어내고 새물을 받았다.

뒤이어 온 마을 사람들의 정성과 기원을 모아 올리던 샘터굿!
지난 한 해 동안 고이고 묵었던 기운을 걷어내고 새해 새아침 새 기운을 열어 나가자는 아름다운 마을의 의식이었다

그러다가 마을마다 수도가 들어오고 동네와 우리집 대나무숲 아래의 우물은 하나 둘 전리품으로 남아 있다가 무서운

전설의 주인공으로 전락하더니 이내 물거품처럼 사라지고 말았다
동네의 우물만 사라진 것이 아니다
우리의 가슴마다 품었던 샘들도 하나둘 이내 사라지고 말았다
누구나 꼭지만 돌리면 콸콸 쏟아지는 수돗물!
'천편일률적으로 솟아나는 수도꼭지 같은 샘이 모든 이의 감성과 마음에도 하나씩 자리하며 사이보그를 만들어 낸 것은

아닐까'라는 우스운 생각이 든다

시를 읊어나가자니 이런 저런 샘들이 생각난다
언젠가 가 봤던 태백의 검룡소는 깊은 산중임에도 하루 이천 톤씩의 샘물이 솟아난다
솟아난 샘물은 많은 생명들의 젖줄이 되어 흐르며 내가 되고 천이 되고 강이 되어 모여 흐르다가 궁극엔 바다가 된다
물은 모든 생명의 근원이다.
그 물을, 그 생명을 솟아나게 하는 원천인 샘!
때로는 토끼 고라니가 목을 축이며 쉬어가는 샘
이른 이침 새들이 목욕하며 자신을 씻고 새 날을 준비하는 샘
혹은 바람이 또는 구름이 쉬었다 가는 샘
이끼들이 초록 초록 돋아나 소꼽놀이 하는 샘
그리고 커다란 강을 이루며 많은 생명을 잉태하는 샘

각기 모양과 그 솟아나는 위치는 달라도 저마다의 꿈을 품고 솟구치는 샘은 생명의 모태이며 젖줄이다
언젠가 우리 모두는 가슴에 누구보다도 정갈하고 맑은 샘을 하나씩 품은 적이 있을 것이다.
어느 날인가 마음이 흐려져 오염이 되고 도무지 들여다봐지지 않게 되어버린 샘
이제 그 샘에 고인 샘물을 퍼내고 하늘샘 하나 새로이 품어봐야 하지 않을까?
새로 들어와 안긴 하늘의 새물내를 맡아봐야 하지 않을까?
밤이면 맑은 하늘의 성품을 고이 담았다가 누군가의 간절한 바람을 별처럼 쏟아내며 하늘에 올리는 정화수!
맑게 정화되어 새 아침, 새 날을 고스란히 담아 빛나는 샘 하나 가슴에 품고 싶다.
2016. 7. 30.
丁香 박찬숙


* http://cafe.daum.net/yesarts에서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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