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좋은 詩는 없다』(미간)

<시> 설날 아침에 만난 네 분의 손

洪 海 里 2013. 6. 12. 04:46

설날 아침에 만난 네 분의 손
- 병술년 정월 초하루(2006. 01. 29.),
고려대 구로병원 서병동 1016호실에서.

 

洪 海 里




새해 들어 첫날 맨 처음 만난,
꼭두새벽부터 병실마다 돌며 더럽고 지저분한 쓰레기통을 비우는,
미화부 아주머니 김진분 님의 가장 깨끗하고 부지런한,
세상을 말끔하게 씻어주는 손.

섬섬옥수를 겨드랑이에 넣어 체온을 재는,
맥을 짚고 혈압을 재 주는,
통통통통 뛰어다니는
간호사 李玟姃 님의 보드랍고 예쁜,
환자를 따뜻하게 어루만지는 손.

맛있는 떡국을 따끈하게 날라온,
넉넉한 몸피에 웃음이 잔잔한,
"좋은 아침입니다.
떡국 드시고 새해 福 많이 받으세요!" 하며 한 해를 열어준
영양사 김미순 님의 도톰하고 정갈한 손.

마음까지 편안하게 보살펴 주는,
오래 치료하던 환자가 퇴원하면 허전하다는,
일곱 살 때 부러진 팔을 치료해준 의사에 반해 의사가 되었다는,
아버지가 준 외자 이름의 안과의사 李花 님의 친절하고 섬세한,
세상을 환하게 밝혀주는 손.

어머니, 저는
지금 조용히 누워 시키는 대로 따르는 나이 든 아기가 되었습니다.

눈을 들어 돌아다보면 아기들뿐입니다.

가끔 소리치며 우는 아기도 있긴 하지만 세상은 평화롭고 조용합니다.

어머니 품안처럼 따뜻합니다.

주는 것으로 즐거워하는 이들의 세상이 환합니다.
세상을 열어가는 깨끗한 손, 부드러운 손, 넉넉한 손, 섬세한 손이 세상을 밝히는 등불을 켜는 것을 압니다.

저는 오늘 네 분의 여자, 그분들의 손을 만나 제 손을 가만히 들여다보며 이 손은 무엇을 했나 생각합니다.

손이 부끄러워 슬그머니 뒤로 감춥니다.

                                                                            - 월간『牛耳詩』(2006.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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