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이동詩人들』1987~1999

촌놈 / 요즘 술 마시기 (구고)

洪 海 里 2013. 7. 10. 04:40

촌놈

                                           

洪 海 里

 

 

 

개비름 쇠비름 질경이 같은 놈아

바랭이 독새풀 달개비 같은 놈아

 

짓밟아 뭉개도 금방 일어서 손을 흔드는 놈아

뿌리째 뽑아 걸쳐 놓아도 죽지 않는 놈아

 

돌무더기 위에 태질을 쳐도 마르지 않는 놈아

으깨어 놓고 잘라 놓아도 움쩍도 않는 놈아

 

불같이 달아오른 길바닥 위에서

개비름은 무슨 꿈을 꾸는지

뜨겁게 가는 세월도 모르는 채

바랭이는 무슨 꿈을 꾸는지

 

몽고군의 말발굽 소리도 잊어버리고?

쏘련제 탱크의 굉음도 잊어버리고?

왜놈들 총칼 소리도 잊어버리고?

                                                  

개피 띠 억새 같은 놈아

방동사니 도꼬마리 여뀌 같은 놈아, 그립다.

 - <우이동詩人들>19집,《저 혼자 아닌 것이 어디 있으랴》(1996, 작가정신)

 

요즘 술 마시기

洪 海 里


요즘은 술을 눈으로 마신다
잔술로 마시던 것을 병째로 마신다

몇 년 전 담근
매실주
잘 익은 호박빛

마음으로 취하면서 술을 빚으면
술에게 미안하다

지금
미안한 마음에 눈부터 취한다
처음처럼

 

 


* 언제 쓴 글인지도 모르는 두 편의 글이다.

2005년 어느 카페에 올려진 것들을 담아왔다.

내가 낳았는지도 모르는 새끼들을 만나는 기분이 참으로 묘하다.

컴퓨터를 처음 시작하고 홈페이지를 만들었을 때 30여 편을 기계를 잘못 작동하여 날려버렸다.

어딘가 떠도는 내 글들아! 아니면 영영 사라졌을 내 영혼들아, 미안하다!

호적[詩集]에도 올리지 못한 글들아, 미안하다!

                                                                                 - 洪海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