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평론·시감상

<시감상> 꽃양귀비 / 김세형(시인)

洪 海 里 2019. 1. 28. 19:00

 

 

 

꽃양귀비

 

洪 海 里

 

 

얼마나 먼 길을

달려왔기로,


새빨갛게 달아올라

넋을 놓는가.


귀 따갑게 쏟아지는

한낮의 햇살,


널 끌어안고

만신창이 만신창이 불타고 싶어라.

                                         - 시집『淸別』(1989)

 

 

 

나의 시감상

 

- 김세형(시인)

 

전 꽃도 달려와 피어 있는 줄은 오늘에야 처음 알았습니다.
전 꽃이 목숨을 걸고 죽을 힘을 다해 전속력으로 달려와 불타고 있는 심장인 줄은

오늘에야 처음 알았습니다.
진작 그걸 알았더라면 만신창이로 끌어 안고 함께 불타버렸을 것을,
그런 줄도 모르고 저 새빨갛게 불타는 심장,

타오르는 불길을 꺼주려 내 몸을 만신창이 태풍으로 흔들어 대다간

그저 무심히 스쳐 지나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난 죄인입니다. 꽃의 법정에 세워져야 마땅한 죄인입니다.

난 사랑에 무심했던 무심죄로 두 다리가 잘린 채 종신형을 선고 받고

질주하지 못 하도록 한자리에 뿌리박고 종신토록 서 있어야 마땅한 죄인입니다.

귀 따갑게 쏟아지는 한낮의 햇살 같은 천만 송이 꽃빛들의 비난을

만신창이가 되도록 온몸으로 받아내며

한자리에 고개 떨구고 속죄하며 서 있어야만 하는 죄인입니다.

사랑에 무심했던 죄는 천도를 어긴 자의 죄에 버금가는 죄로서

난 천형에 처해져야 마땅한 죄인 입니다.

꽃의 법정 판사님이시여!

저를 차라리 화형에 처해 주십시요.

저 불타는 양귀비를 온몸으로 끌어안고 이 귀 따가운 태양빛 아래

새빨갛게 달아오르다 만신창이로 불타게 해 주십시요.

중독되지 않는 사랑은 사랑이 아닌 줄을 이제야 알았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죄는 사랑에 불타지 않는 죄

만신창이로 만신창이로 불타 버리지 않은 죄

그 죄값을 달게 받을 수 있도록 날 화형에 처해 주십시요.

저 뜨거운 넋을 끌어안고 활활 타오르다 하얗게 재로 남게 해 주십시요.

타오르는 고통의 기쁨으로 죽을 수 있게 절 용서치 마시고

만신창이 花刑에 처해 주십시요.




* http://blog.daum.net/jib17에서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