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명자꽃
꿈은 별이 된다고 한다
너에게 가는 길은
별과 별 사이 꿈꾸는 길
오늘 밤엔 별이 뜨지 않는다
별이 뜬들 또 뭘 하겠는가
사랑이란
지상에 별 하나 다는 일이라고
별것 아닌 듯이
늘 해가 뜨고 달이 뜨던
환한 얼굴의
명자 고년 말은 했지만
얼굴은 새빨갛게 물들었었지
밤이 오지 않는데 별이 뜰 것인가
잠이 오지 않는데 꿈이 올 것인가.
♧ 능소화
언제 바르게 살아 본 적 있었던가
평생 사내에게 빌붙어 살면서도
빌어먹을 년!
그래도 그거 하나는 세어서
밤낮없이
그 짓거리로 세월을 낚다 진이 다 빠져
축 늘어져서도
단내 풍기며 흔들리고 있네.
마음 빼앗기고 몸도 준 사내에게
너 아니면
못 산다고 목을 옥죄고
바람에 감창甘唱소리 헐떡헐떡 흘리는
초록치마 능소화 저년
갑작스런 발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라, 花들짝,
붉은 혀 빼물고 늘어져 있네.
♧ 배꽃
1
바람에 베여지는 달빛의 심장
잡티 하나 없는 하얀 불꽃이네
호르르 호르르 찰싹이는 은하의 물결.
2
천사들이 살풀이를 추고 있다
춤 끝나고 돌아서서 눈물질 때
폭탄처럼 떨어지는 꽃이파리
그 자리마다 그늘이 파여……
3
고요가 겨냥하는 만남을 위하여
배꽃과 배꽃 사이 천사의 눈짓이 이어지고
꽃잎들이 지상을 하얗게 포옹하고 있다
사형집행장의 눈물일지도 몰라.
4
배와 꽃 사이를 시간이 채우고 있어
배꽃은 하나지만 둘이다
나와 내가 하나이면서 둘이듯이
시간은 존재 사이에 그렇게 스민다.
♧ 해당화
그해 여름 산사에서 만난
쬐끄마한 계집애
귓볼까지 빠알갛게 물든 계집애
절집 해우소 지붕 아래로
해는 뉘엿 떨어지고
헐떡이는 곡두만 어른거렸지
저녁바람이
조용한 절마당을 쓸고 있을 때
발갛게 물든 풍경소리
파·르·르·파·르·르 흩어지고 있었지
진흙 세상 속으로 환속하고 있었지.
♧ 아카시아
가시나무 꽃피어 여름이 오네
그대의 사랑빛이 저리하리야
소리없이 눈물만 뿌리는 여인
산자락에 머리 풀고 홀로 울어라
이슬 젖은 소복이 하늘에 뜬다
떼로떼로 파고드는 젖빛 그리움
떠나간 그 님은 소식도 없고
서편 하늘 노을만 섧게 젖누나.
♧ 타래난초
천상으로 오르는
원형 계단
잔잔한
배경 음악
분홍빛
카펫
가만가만 오르는
소복의 여인
바르르 바르르
떨리는 숨결.
*치자꽃
* http://blog.daum.net/jib17에서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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