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치매행致梅行』(2015)

약속 -치매행 · 23

洪 海 里 2014. 2. 24. 20:00

약속

- 치매행致梅行 · 23

 

洪 海 里

 

 

 

언제 여행 한번 가자 

해 놓고,

 

멋진 곳에 가 식사 한번 하자

해 놓고,

 

봄이 오면

꽃 구경 한번 가자

해 놓고,

 

지금은

풍한설

섣달그믐 한밤입니다.

 

 

* http://cafe.daum.net/yesarts에서 옮김.


  홍해리 시인의 아내는 불과 사오 년 전만 해도 서울시내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였다 한다. 집에서는 세 아이의 어머니며 시인인 남편의 뒷바라지를 했던 현모양처였다, 자식들 키워 며느리도 보고 손자 손녀도 커가는 행복한 집안이었다, 그래서 정년퇴직도 했다. 그동안 이루지 못 했던 여행도 하고 여유롭게 살 일만 남았던 것이다. 그런데 아내가 조금씩 이상해지기 시작했다. 처음엔 그저 건망증인 줄 알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기억력 감퇴에 실어증 증세까지 나타났다. 언젠가 홍해리 시인이 시낭송회서 동료 시인들께 말하기를 <집사람이 명사를 기억하지 못해>라고 말해 동료시인들이 깜짝 놀라 게 된 것이다. 이렇게 아내는 치매를 앓게 된 것이다. 아직 치매가 올 나이도 아니고 왕성한 활동을 할 나이에 당한 불치병. 이렇게 찾아오는 아내의 병을 예감하지도 못하고 시인은 집필에만 매진했던 것이다.

 

  언제 우리 남해든 제주도든 아니면 태국 방콕이든 타이베이든 손잡고 여행 갔다 오자. 그 여행 당신 교직생활로 못했으니 한번 가자. 그런 다짐도 했고, 멋진 호텔에 가서 남들처럼 좋은 식사도 하자. 그거 우리라고 못 할게 없지. 봄이 오면 꽃구경도 같이 가서 놀다 오자. 그거 누가 못하게 말리겠나. 우리 둘 가고 싶으면 가는 거지. 그런데 그 약속이 다 허물어지고 말았던 것이다. 꽃구경도 여행도 건강이 뒷받침을 해야 가능한 것이다. 그래서 지금은 모든 것이 불가능하고 이룰 수 없는 꿈이 되고 말았다. 홍해리 시인은 며칠 전에 전하기를 지금 방 청소를 하고 세탁기를 돌리고 있다고 했다.

 - 정 일 남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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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울고 말았다
시를 보는 순간 가슴이 찡 ~하게 울리며 아팠다
마치 천년의 시간 동안 단 한 번도 울리지 못했던 징이 그 한스러움을 토해내듯 깊은 아픔으로 손끝이 아려왔다
내가 겪은 것도 아닌데 그냥 아프다
아파서 시를 가슴에 품었다
그리고, 강가에 서서 꺼이꺼이 토해 놓았다
강물따라 흘러가라고 흐르다 보면 정화되어져
다시 맑은 정신으로 돌아오지 않을까 하여
간절한 바람을 담아 서리서리 풀어놓았다
여울처럼 일렁이다가
파문으로 돌돌거리다가
그렇게 어여쁜 기억 한 자락 솟구치면
줄줄이 아름다운 기억들이 연줄 되어 날아오르라고...
은빛 비늘 은어처럼 반짝이며 튀어오르라고
노을진 강가에 살며시 내려놓았다
너무도 아파서
홀로 가슴에 품기엔 너무도 아파서
강물과 함께 울어본다.
시가 아프다

약속
ㅡ치매행致梅行.23  / 洪海里

언제 여행 한번 가자
해 놓고,

멋진 곳에 가 식사 한번 하자
해 놓고,

봄이 오면
꽃 구경 한번 가자
해 놓고,

지금은
북풍한설
섣달그믐 한밤입니다.

ㅡㅡ..
옮기면서도 또 꺼이꺼이해진다.
치매!!
잊고 싶은 게 많은 것일까?
아니면 기억하고 싶은 게 많은 것일까?
어쩌면 혼자만의 꽃동산에서
매화향 폴폴 날리는 동산에서
하얀 나비춤이라도 추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러나,
지켜보는 사람은 섣달그믐 한밤이다
여행도 갈 수 없고
멋진 곳에서 우아하게 식사도 못하고
봄철 꽃구경도 할 수 없는 북풍한설.
아!!
아프다
시가 아파서 그냥 강가에 서 있다.

2014. 07. 29. 20:00
북한강 어느 언저리에서,
丁香 박찬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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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 콘서트 안내

2016. 11. 16.(수) 11:00~12:00
EBS 라디오 FM 104.5MHz


<詩 콘서트>

* 오늘 문자 : 못지켜서 미안한 약속

- 약속 / 홍해리
- 귀뚜라미와 나와 / 윤동주


* 테마로 읽는 시 - <고양이>
- 말해봐 / 프란체스코 마르치울리아노
- 고양이가 돌아오는 저녁 / 송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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