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치매행致梅行』(2015)

<시> 블랙홀 -致梅行 70

洪 海 里 2014. 3. 11. 19:59

블랙홀

- 치매행致梅行 · 70

 

洪 海 里

 



바람 불어, 환장할 놈의 분홍빛 봄바람 불어
뼈마디마다 꽃바람 들었습니다
달빛 같은 속살에 구멍 숭숭 뚫리고

뼈가 푸석푸석 바람소리 요란합니다
봄 내내 머리 허리 다리가 저리고 시리고
꽃잎에 입 한 번 못 맞추고 봄은 언뜻 지나
푸른 울음 걸게 뱉는 여름으로 가고 맙니다
한동안 머리가 어리어리 어지럽더니
허리가 뻐근하고 끊어질 듯 무겁습니다
허벅지 아래 무릎도 시큰거리고 뻣뻣해
절룩절룩 다리 아파 죽겠습니다
길다 보면 결국 밟히고 마는 나비 같은
말은 늘 꼬리에 꼬리를 물어
말 많은 새의 부리도 저리고 쑤십니다
이리저리 아닌 곳 없이 환하게
꽃 피워 늘어진 개나리도 머리가 아픕니다
너구리도 오소리도 허리가 아픕니다
꾸구리 퉁가리 자가사리 치리 쏘가리도 꼬리가 아픕니다
한평생 이 거리 저 거리 다 다닌 버커리
나리꽃 아래 오리도 5리도 못 가 다리를 건너며 다리를 접니다
울타리 옆 항아리나 깨지 않았는지
철 늦어 개구리도 못 잡아먹은 서리병아리나
파리만도 못한 우리 인생 좁은 우리에 갇혀 끝나고 맙니다
하늘이 무너질까 땅이 꺼질까 걱정 근심은 장미꽃처럼 창궐하고
뻥 뚫어 뻥뻥 뚫어 내 가슴속에 블랙홀 하나 만듭니다
죽겠다, 정말, 이 환장할 놈의 봄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