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평론·시감상

신종플루도 결국 지나간다 / 주간불교

洪 海 里 2014. 10. 25. 12:02

신종플루도 결국 지나간다

 

 

 


 `눈멀면/ 아름답지 않은 것 없고/ 귀먹으면/ 황홀치 않은 소리 있으랴/ 마음 버리면/ 모든 것이 가득하니/ 다 주어버리고/ 텅빈 들녘에 서면/ 눈물겨운 마음자리도/ 스스로 빛이 나네.'

 

시를 영혼의 비타민이라고 표현하면서 매일 한 알씩 비타민을 먹듯이 시 한 편씩 읽기를 권하는 한국 문단의 중진 홍해리의 `가을 들녘에 서서' 전문이다. 조급해하지 않고 욕심을 버릴수록 모든 것이 더 아름답고 풍요롭게 느껴진다는 사실과 이치를 추수 끝난 가을 들판을 바라보면서 확인하고 있다.

 

홍 시인의 메시지 그대로 어떤 사람에게는 풍요로운 결실의 계절로 비치면서 또 어떤 사람에게는 쓸쓸하고 황량한 조락(凋落)의 계절로 다가오는 가을이 깊어가고 있다.

 

 풍요롭게 바라보든, 황량하게 느끼든 가을은 깊어졌다 지나가고 어김없이 겨울로 이어진다. 가을의 한가운데서 추석을 앞두고 우려가 더 커지고 있는 신종플루의 확산 추세 역시 멈출 수밖에 없다.

 

오래지 않아 사회적 불안의 대상으로부터도 멀어져갈 것이다. 일정 기간 후에 또다른 전염병이 나타나 세계의 걱정거리가 될 것이다. 나타났다 사라지는 일의 반복은 우주의 질서다. 전염병도 예외가 아니다. 세계보건기구(WHO)가 정식 명칭을 `신종인플루엔자A'(H1N1)로 붙인 신종플루에 대한 경보를 최고 단계인 6단계, 곧 팬데믹(대유행) 단계로 6월14일 격상한 이래 감염 확산과 함께 커져온 세계 전역의 불안감도 언젠가는 사라지고 다른 어떤 일로 인한 불안감이 커질 것이다.

 

 더욱이 신종플루에 대해서는 이미 효과가 검증된 치료제 타미플루가 보급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최근 개발된 백신 또한 대량 생산돚공급되기 시작했다. 한국에서도 정부는 물론 의료계 안팎의 대처가 적극적이어서 극복에 큰 어려움이 없으리라는 게 전문가들의 전망이다.

 

감염자가 사망하는 치사율 또한 매년 겨울에 찾아오는 계절독감과 비슷한 수준이라고 한다. 발생 4개월이 지난 9월 현재 세계 평균이 0.1∼0.2%, 한국은 0.08% 수준이어서 계절독감보다 전파력은 강하지만 위험성이 더 높다고 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무서운 속도로 감염이 확산돼 이곳저곳에서 사망자가 쉴새없이 나오게 함으로써 인류 전체를 공포에 떨게 한 큰 재앙도 정복해온 것이 전염병 치유의 역사다. 페스트도 그 중의 하나다. 중국 윈난성에서 발생한 것으로 추정되는 페스트는 중국 전역으로 확산돼 1333년 베이징 인구의 3분의 2를 죽음으로 몰아넣으면서 유럽까지 휩쓸어 당시 유럽 인구의 3분의 1을 감소시키기도 했으나 현재 이름만 남다시피 했다.

 

 20세기에만 3억명의 생명을 앗아감으로써 인류 역사에서 가장 많은 사망자를 낸 전염병으로 알려진 천연두도 그렇다. 1796년 영국의 외과의사 E 제너가 천연두 예방백신인 종두(種痘)를 창시한 이래 확산 기세가 꺾이고 점차 사라져 1980년에는 WHO가 천연두 근절 선언을 공포하기에 이르렀고, 현재 일부 국가의 연구소에만 그 바이러스가 보관돼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팬데믹 단계 전염병으로서의 수명 또한 신종플루는 짧을 개연성이 크다. 8번째 사망자가 발생한 9월15일 현재 감염자 수 1만명이 넘었다고 하지만, 국민과 정부 모두 각별히 조심하고 경계하면서 차분히 대처하면 될 일이다.

 

 차분하고 넉넉한 마음으로 대처해야 할 일이 어디 신종플루뿐일 것인가. 너나없이 가을의 한복판에서 조락과 죽음을 재촉하는 독(毒)이 아니라 희망과 생명을 키우고 북돋우는 비타민을 찾아 삼켜야 한다. 그것은 홍해리 시인이 또다른 시 `하늘이 밥상이다'에서 이렇게 읊은 대로 각자 시인의 마음을 갖고 꿈을 꾸고 사랑을 실천하는 일일 수도 있다.

 

 `한밤이면 별이 가득 차려지고/ 아이들이 빙 둘러앉아 꿈을 떠 먹는다/ 하늘 열매를, 반짝반짝, 따 먹으며/ 아이들은 잠자는 사이 저도 모르게 자라고// 나이 들면 허기져도 그냥 사는 걸까/ 꿈이 없는 사람은 빈집/ 추억이 없는 이는 초라한 밥상인데,// 시인은 생(生) 속에서 꿈을/ 꿈 속에서 별을, 별에서 꽃을 피우는 사람/ 사랑은 영혼의 꽃/ 꿈이 없으면 꽃은 피지 않아,// 아이들은 하늘에 사는/ 꿈을 먹고 꽃을 피우는 시인,/ 하늘은 그들의 밥상.'

 

 

김종호 (문화일보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