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치매행致梅行』(2015)

<시> 애면글면 - 치매행致梅行 · 149

洪 海 里 2015. 2. 5. 08:36

애면글면

- 치매행致梅行 · 149

 

洪 海 里

 

 

 

머릿속에 고이 잠든 아내의 영혼

깨워서 들어올릴 수 있을까

지레가 없는 남편은 지레 속이 터지고

가슴속 지뢰밭에 묻혀 있는, 저

숱한 불발탄들

제풀에 터지지도 못 합니다

한평생 두남받은 일 없는 사람

어쩌자고 지청구 먹을 짓만 하는지

속이 타다 제물에 문드러집니다

오늘도 소금엣밥으로 한끼를 때우며

하루를 천년처럼 천연세월하고 있습니다

섣달 그믐 대목땜하는 날씨로

창밖은 꽁꽁 얼어붙었습니다

그래도 내 마음계곡은 텅 비어 있어

바람은 제바람에 우름우름 웁니다

사람이 많으면 길이 열린다지만

단 둘이 낑낑대는 우리 집은

가을철 물웅덩이 올챙이처럼

애면글면 애면글면

애이불비 애이불비 혼자 놉니다.

 

 

* 갑자기 사람의 이름이 안 떠오른다. 엊그제의 행적과 지명이, 책과 드라마 또는 읽었던 시가 점점 기억이 안 난다. 나도 혹시나 치매?

  내 머릿속의 지우개! 치매에 걸리면 기억이 지워진다. 바야흐로 고령 사회에 접어들었다. 65세 이상의 10%, 80대가 되면 3명 중 1명, 85세가 되면 그 위험도가 50%에 육박한다니, 2명 중 1명은 치매라는 얘기다. 치매는 암보다 더 무섭다. 환자 당사자 인격의 황폐화는 물론 온 가족 삶의 질을 송두리째 무너뜨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행이도 대개는 치매가 아니라 건망증이다. 일반적으로 건망증의 경우 기억력의 저하를 호소하지만 언어능력이나 계산력, 판단력 등은 정상이어서 일상적인 생활에 지장을 주지 않는다. 잊어버렸던 내용을 곧 기억해 낸다거나 힌트를 들으면 금방 기억해 내곤 한다. 치매의 경우는 이 모든 능력의 상실과 더불어 성격의 변화까지 오니, 노인성 치매인 알츠하이머병이건 중풍 등으로 오는 혈관성 치매이건 모두 두려운 노화 현상임에 틀림없다. 그리고 어쩐 일인지 전체 치매환자의 70% 이상이 여자이다.

 

  『치매행(致梅行)』! 이 시집은 “아내의 아픔을 곁에서 지켜보면서 어찌할 수 없는 안타까운 심경을 시인의 살과 뼈를 깎아 엮어낸 사랑의 시편들이다. 다하지 못한 사랑에 대한 참회록이며 미리 기록해 둔 순애보라고도 할 수 있다. 한 지아비가 한 지어미에게 쏟는 사랑의 경전이며, 같은 아픔을 겪고 있는 이들에게 보내는 경구이기도 하다.(임 보)” 또한 "잃어버린 아내의 언어를 매화향기 같은 진실한 시어로 개화시킨(교보문고)" 한 송이 「필화(筆花)」이고 사부곡(思婦曲)이다.

 

  평생 교편을 잡으며 집에서는 세 자식과 까다로운 시인 남편의 뒷바라지를 묵묵히 해내던 현모양처가 이상해지기 시작했단다. 처음에는 그저 건망증이려니 했으나, 점차 증세가 심해지며 기억력이 현저히 감퇴되고 실어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과거로 퇴행해버려 시간여행자가 된 아내를 데리고 이 병원 저 병원으로 전전하며 혼자 간호를 도맡다가, 낮에는 치매 케어센터(시인은 어른유치원이라 표현)에서 밤과 휴일은 집에서 홀로 돌보며, 시인은 깜깜한 마음으로 혈서를 쓰듯 한 편 한 편, 150편의 「치매행(致梅行)」을 완성하였다.

 

  「애면글면-치매행(致梅行) · 149」은 꽁꽁 얼어붙은 겨울날 아내와 둘이서 보낸 하루를 담담하게 그리고 있다. 한없이 슬프고 처량한 현실이지만, 시인은 능청스럽게 고유의 우리 언어들을 찾아내고 언어의 펀을 구사하며 “애이불비”! 하게 노래하고 있다. 시인의 말에서 “이 글은 아내에 대한 관찰기록이요, 내 자신의 반성과 그 고백이라서 잘 쓰려고 기교를 부리지 않았으니 욕교반졸(欲巧反拙)은 아니라 믿는다…….또한 마음이 한가해야 정신이 왕성해진다는데 요즘 마음만 부산하고 우왕좌왕하니 글도 제대로 되지 않는다. 그러니 심한신왕(心閒神旺)과도 거리가 멀다”고 했다. 겸손이다. 스무 권에 달하는 시인의 여타 시집 속의 시들과 마찬가지로, 이 시집의 모든 시들은 소박하고 단정하지만 유려하고 격조 있다. 답답하고 암담한 현실을 처연해하다가 승화된 사랑과 인생의 깊은 통찰을 품위 있고 무르익은 시어들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치매(癡呆)와 치매(致梅)는 소리의 은유로 “치매(致梅)”는 시인이 만든 말이다. “매화에 이르는 길”, 즉 “무념무상의 세계, 순진하고 무구한 어린아이가 되는 병이 치매”이기 때문에 치매(致梅)라고 부른다는 것이다. 시인은 또한 “이 시집 『치매행(致梅行)』을 환자를 돌보고 있는 분들에게 바치고자 한다”며, 시집을 전국 치매환자 요양시설에 보내 수고하고 짐 진 자들과 함께 아픔을 나누고 위로하였다고 한다. 치매라는 불행을 매화로 승화시킨 시편들도 절절이 아름다워 가슴이 아린데, 이런 훈훈한 소식을 들으니 그저 아득할 뿐이다.

 

  지금 남녘에서는 한창 매화소식이 올라오고 있다. 이 원고를 마치면 얼른 남쪽 어드메로 내려가야겠다. 가서 만개한 매화에 킁킁 코를 묻고 누리에 펴지는 이 진한 감동의 향기를 오래오래 되새겨 보고픈 것이다.

                             - 이 영 혜(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