얘 어디 갔어?
- 치매행致梅行 · 146
洪 海 里
"얘 어디 갔어?"
아침에 눈만 뜨면 묻고
밥을 먹다가도 또 물었습니다
2015년 1월 10일 딸애 결혼식
도로교통공단으로 가는 길에서도
"어디 가, 어디 가?" 하면서
"얘 어디 갔어?"를 되풀이했습니다
고운 한복으로 차려입고
예식 내내 딸애를 바라다보며
한마디 말도 없었습니다
딸애가 무릎 아래를 벗어나고 나서
아내는 줄 것도 없는 말수가 더 줄었습니다
어떤 느낌으로 아는 것인지
언뜻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얘 어디 갔어?"가 사라졌습니다
딸애가 제 짝과 함께 떠났어도
세상은 달라진 것이 하나 없는데
우리집 방 한 칸이 텅 비었습니다
아내의 머릿속처럼 비어 버렸습니다.
* 시인의 아내는 와병 중이시다. 언젠가부터 빵이란 아이스크림이랑 냉장고에
빼곡하게 쌓아 놓더니, 이제는 쌓아두는 것조차도 잊어버렸다. 단어의 조합은커녕
자신이 서 있는 땅덩어리조차도 어디가 어딘지 관심이 없다. 완전히 은유적인
치매로 자신을 송두리째 다른 곳으로 이전해 가버리셨다. 그런 아내를 두고
시인은 "치매는 치매癡呆가 아니라 치매致梅라 함이 마땅하다."라고 정의했다.
누구는 세상에서 가장 끔찍한 병이 치매라 하기도 한다는데, 시인은 그것을
매화에 이르는 길이라 표상했다. "얘 어디 갔어?"는 시인의 아내가 시인에게
가장 많이 묻는 말이다. 굳이 대답을 하지 않아도 "얘 어디 갔어?"라는 발화에는
어미로서 딸을 걱정하는 간절함이 담겨 있다.
그런 시인의 딸이 시집가는 날, 치매에 걸린 아내는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이상할 정도로 그날 이후로는 "얘 어디 갔어?"가 사라졌다. 본능은 이미
"딸애가 무릎 아래를 벗어"난 것을 눈치챈 모양이다. 그날 이후 아내는 딸아이
찾는 일을 그만둔 듯하다. 그날, 필자도 예식의 자리에 참석했었는데, 시인이
여식에게 들려주는 편지 앞에서 하염없이 목이 메는 장면을 목격했다. 그때도
아내는 자리 곱게 보존하고 앉아서 딸아이와 시인을 해맑게 바라보고 있었다.
참으로 고운 자태였다. 치매라고는 믿어지지 않았지만, 모든 질문에 뜻없는
웃음으로 대답하는 시인의 아내가 아픈 시처럼 오히려 마음을 다치게 했다.
19행 짜리 짧은 시에서 울림이 이렇게 큰 것은 아마도 시의 진정성 때문일
것이다. 무엇이 시를 시답게 하는가. "아내의 머릿속처럼 비어" "방 한 칸이 텅"
빈자리에서 이제는 "얘 어디 갔어?"라고 묻지도 않는 치매癡呆, 아니 치매致梅가
새삼 잃어버린 "나, 어디 갔어?"로 간절하게 치환되어 읽혀지는 순간이 있기
때문이다.
- 손 현 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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