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집 한 채
- 치매행致梅行 · 168
洪 海 里
반듯하던 집이 하릴없이 기울고
지붕에 구멍이 나 비 새는 방안
희미한 호롱불도 기름이 다했다
곳간의 문이 저절로 열려 버린
아니, 닫힌 것인지도 모르는
빈집 한 채
새들은 기억의 틈새로 날아가 버리고
여린 날개 겨우 한두 마리
날지도 못하고 땅바닥을 쪼다
애처롭게 울고 있는 다 저녁때
한 켜씩 정성으로 쌓아 올린 돌담을 지나
삐그덕대지도 않는 사립을 들어서면
처마 밑에 거미줄만 무성하게 졸고 있는
남루의 추억 몇 장
사노라면 선거운 일이 한둘이랴만
방전된 기억의 금고는 녹이 슬 대로 슬고
이어지던 분별의 끈은 끊어진 지 한참
집이 무너지는 것도 모르는 아둔패기 사내
삼오야 밝은 달밤에도 보이는 게 없어
이리 갈까 저리 갈까 허둥대는데
어둠이 지샌대도 아침이 올 기약이 없음이여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한다는 텅 빈 슬픔이여.
- 계간《다시올文學》2015.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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