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매화에 이르는 길』(2017)

빈집 한 채 - 치매행致梅行 · 168

洪 海 里 2015. 8. 23. 04:13

빈집 한 채

- 치매행致梅行 · 168

 

洪 海 里

 

 

 

반듯하던 집이 하릴없이 기울고

지붕에 구멍이 나 비 새는 방안

희미한 호롱불도 기름이 다했다

 

곳간의 문이 저절로 열려 버린

아니, 닫힌 것인지도 모르는

빈집 한 채

 

새들은 기억의 틈새로 날아가 버리고

여린 날개 겨우 한두 마리

날지도 못하고 땅바닥을 쪼다

애처롭게 울고 있는 다 저녁때

 

한 켜씩 정성으로 쌓아 올린 돌담을 지나

삐그덕대지도 않는 사립을 들어서면

처마 밑에 거미줄만 무성하게 졸고 있는

남루의 추억 몇 장

 

사노라면 선거운 일이 한둘이랴만

방전된 기억의 금고는 녹이 슬 대로 슬고

이어지던 분별의 끈은 끊어진 지 한참

집이 무너지는 것도 모르는 아둔패기 사내

 

삼오야 밝은 달밤에도 보이는 게 없어

이리 갈까 저리 갈까 허둥대는데

어둠이 지샌대도 아침이 올 기약이 없음이여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한다는 텅 빈 슬픔이여.

 

 - 계간《다시올文學》2015. 겨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