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정곡론正鵠論』(2020)

병실 풍경 1~5 (2005 고려대 구로병원)

洪 海 里 2016. 12. 5. 17:28

병실 풍경



1.환자는 애기다    

    


벗기고 씻기고

남자 환자의 옷을 갈아입히는

여자 간병인

 

"관찮아요, 괜찮아요, 선생님!

환자는 애기예요."

 

부끄러워 자꾸만 망서리는

나이 팔십

 

"환자는 애기만도 못해요.

가만히 계세요, 괜찮아요."

 

그래도 몸을 움츠리고 가리는

나이 팔십.

 

     

 

2.어머니 마음

 

 

"내가 아프고 말지

피를 말려, 애가 다 터져,

이제 다신 병원에 오지 마

오더라도 에미 간 뒤에나

오든지 해

아무리 수술 결과가 좋아두

지레 죽는 줄 알았다

다섯 시간 걸렸어

이제 병실에 올라왔어."

일흔이 마흔에게 하는 말

 

어머니 가시고 나서

병원에 왔으니 나는 어떤가

아니네, 어머니 생전에도 왔었지,

별수없구나

그나 나나 불효자인 것은. 

 

      

 

3.''''다 


 

세월을 먹을 만큼은 먹어서

얼굴에 검은 꽃이 피는

환갑도 훨씬 지났는데

묵직한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말마다 '씨팔'로 시작하고

그렇게 끝나는 이무산 씨

"씨팔, 맛도 없는 밥이 왜 이리 비싸"

"먹을 것도 없는 것이 비싸기는, 씨팔"

입맛도 날아가고 밥맛도 떨어져

산해진미 진수성찬인들 입맛이 당길까

하물며 병원밥이 무슨 맛이 있겠는가

건강해야 밥맛도 오르는 법이지

중이 싫다고 절이 떠날 수는 없어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면 그만인데

무슨 씨를 팔겠다고

무슨 씨를 팔라고

'씨팔! 씨팔!' 하고 있는 것일까.

 

   

 

4.퇴원 전야

 

 

토막잠 몇 개 주어다 징검다리를 놓다

 

추억들이 떠올랐다 하나 둘 사라지고

 

꽃망울에 아른거리는 겨울의 잠 속에서

 

차창을 밝힌 간이역에 섰던 열차 출발하다.

 

     

 

5.잘난 부부


      

천방지축 뛰고 소리 지르는 아이

말리는 엄마가 더 시끄럽다.

 

병원 음식 맛없어 못 먹인다고

치킨, 햄버거, 패스트후드, 컵라면만

사오는 아빠

 

시골의 아버지는 시력이 다하고

어머니는 귀가 멀리 갔는데

치사랑은 눈곱만큼도 없고

 

내리사랑밖에 모르는

똑똑하고 잘난 엄마, 아빠들

잘났다, 잘났어, 정말!

 

* 위의 글들은 2005년 7월 고려대학교 구로병원에 2주 동안 입원해 있을 때 본

  병실 풍경을 그린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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