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평론·시감상

수련睡蓮 그늘 / 이동훈(시인)

洪 海 里 2017. 6. 13. 04:55

수련睡蓮 그늘

 

洪 海 里

 

 

수련이 물 위에 드리우는 그늘이

천 길 물속 섬려한 하늘이라면

칠흑의 아픔까지 금세 환해지겠네

그늘이란 너를 기다리며 깊어지는

내 마음의 거문고 소리 아니겠느냐

그 속에 들어와 수련꽃 무릎베개 하고

푸르게 한잠 자고 싶지 않느냐

남실남실 잔물결에 나울거리는

천마의 발자국들

수련잎에 눈물 하나 고여 있거든

그리움의 사리라 어림치거라

물속 암자에서 피워올리는

푸른 독경의 소리 없는 해인海印

무릎 꿇고 엎드려 귀 기울인다 한들

저 하얀 꽃의 속내를 짐작이나 하겠느냐

시름시름 속울음 시리게 삭아

물에 잠긴 하늘이 마냥 깊구나

물잠자리 한 마리 물탑 쌓고 날아오르거든

네 마음 이랑이랑 빗장 지르고

천마 한 마리 가슴속에 품어 두어라

수련이 드리운 그늘이 깊고 환하다.

            - 시집『독종』(2012, 북인)

 

 

* 감상

  수련, 수련 그늘, 수련잎을 넘나드는 시인의 연주는 물탑을 세우는 일처럼 박력이 있으면서도 그 물탑이 잔상만 남기고 금방 사라질 것 같은 애잔한 느낌도 준다.
  수련 그늘은 수련을 떼놓고 생각할 수 없으니 그늘은 일차적으로 존재의 배경이 되고 존재를 환기하는 장치로 기능한다. 이후 존재와 상관없이 생명력을 얻은 그늘은 하늘을 받아들이면서 더욱 깊어진다. 그 깊이는 투명도 하여 “섬려한 하늘”을 그대로 반영하기에 “칠흑의 아픔까지 금세 환해지”는 느낌이다. 그 그늘에 무릎베개하고 한잠 자도 좋을 것을, “그리움의 사리” 같은 눈물 하나 보고 만다.
  그늘이 커질수록 그리움도 자라고, 그 그리움은 끝내 결실하지 못하는 건가. 연못 밖의 화자에게 참하게 앉은 수련은 더없이 이끌리는 존재일 테지만 품고 싶은 것은 언제나 한 발 멀리 있다. 수련은 쉽게 가 닿을 수 없는 연인처럼, 아무리 애써도 실체를 보여주지 않는 진리처럼 저만큼 있고 그늘만 길게 드리는 것이리라.
  그늘은 존재를 반영한다. 존재의 높이가 그늘의 깊이로 나타나기도 할 것이다. 참된 존재를 지향하는 건 구도와 같아서 한 걸음씩 그늘로 들어가서 마음의 이랑에 빗장 지르는 염결한 자세도 요구되지만 동시에 천마 한 마리 품는 비상한 꿈도 간직하고 있다. 수련잎 모양새에서 천마의 발자국을 연상하고, 천마의 발자국에서 해인海印을 연결하는 자유자재한 상상력은 이 시에서 유난히 돋보이는 대목이다.
  “수련이 드리운 그늘이 깊고 환하다”지만 시인이 드리운 그늘도 그 못지않게 깊어서 자꾸 아득해진다.

   - 이 동 훈(시인) /《두레문학》2017 상반기號.

 

* 노민석 박사 페북에서 옮김.(2023.06.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