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평론·시감상

<감상> 해질녘 - 치매행致梅行 . 151 / 정일남(시인)

洪 海 里 2017. 6. 14. 04:20

<감상>

 

해질녘

    - 치매행致梅行 . 151

 

 洪 海 里

 

 

 

아내는 자유의 나라에서

놀고 있는데,

 

작달비내리 퍼붓는

해질녁

 

너덜겅길

비틀비틀 걸어가는

 

사내 하나

등이 굽고 어깨가 처진.

 

 

   홍해리 시인께서 연작시 치매행2매화에 이르는 길을 상재했다. 이 시집에 축하를 드리지 않을 수 없다. 그러면서도 마음은 편치 못하다. 나도 정신과 약을 복용하는 몸이라 우이동을 한 번 방문하지 못 했다. 죄스러운 마음 지울 수 없다. 이 시집은 세상을 낙관적으로 보는 여타의 시집과는 다르다. 수사와 기교와 언어유희로 독자를 곤혹스럽게 하는 시와는 다르다. 이 시들은  아내의 질환에 대한 자기 고백이고 진정성이라 하겠다. 지난번치매행1시집에약속이란 시가 있었다. 그 시를 소개하면,

 

 

언제 여행 한번 가자

해 놓고

 

멋진 곳에 가 식사 한번 하자

해 놓고

 

봄 오면

꽃구경 한번 가자

해 놓고

 

지금은

북풍한설

섣달그믐 한밤입니다.

    - 약속 - 致梅行 . 23

 

   홍해리 시인은 위와 같은 약속을 아내와 평소에 했던 것 같다. 아직 아내가 교직생활을 할 때여서 명예퇴직을 하고 나면, 시간의 여유가 생겨서 남들이 가는 동남아 여행도 좋고 조금 멀리 유럽여행도 가자는 약속을 했던 것 같다. 뿐만 아니라 멋진 호텔에 가서 남들도 하는 외식도 못할 게 없다고 다짐했고, 봄이 오면 꽃구경, 진해 벚꽃 구경도 좋고 소백산 철쭉꽃도 좋고 제주도 유채꽃 구경도 못할 게 없다는 약속을 해왔던 것 같다. 하지만 그 약속을 이행할 수 없는 처지에 이른 것이다. 관광은 우선 건강이 유지되어야 가능하다.

 

   인생을 살다 보면 이제 여유가 좀 생길 만하면 악재가 생긴다. 자식들 키워 짝을 지워 살게 만들어 날려 보내고 노년을 좀 편하게 살만할 때, 예기치 않게 북풍한설 같은 시련이 안겨온 것이다. 이런 시련에서 벗어날 길은 없는 것인가. 치매는 뇌혈관의 병이 아니다. 뇌신경의 병으로 알고 있다. 병이란 환자는 말할 것도 없지만 수발하는 보호자가 더 괴롭다. 치매에 대한 설명은 여기서 이야기할 것이 못 된다. 독자들이여. 치매를 이해하려면 홍해리 시인의 치매시’ 1권과 2권을 읽어보면 소상히 알 수 있을 것이다.

 

   아내는 근심 걱정이 없는 사람이 되었다. 진정 자유인이 된 것이다. 익힌 학문과 지식이 쓸모가 없게 되었다. 예의와 도덕과 수치심을 모르는 자유인이 되었다. 자기감정 표현이 상실되고 같이 살면서도 의사소통이 되지 않는다. 해질녘 작달비는 퍼붓는데, 창살이 없는 이 감옥에서 사내 하나(시인)의 등은 낙타 등처럼 굽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해가 져도 해가 지는 줄을 모르는 반려자와의 동행은 이 병을 앓는 자의 보호자끼리만 이해할 것 같다. 하루속히 완치약이 나왔으면 한다. 한국 문단에서 연작시를 쓴 시인들이 많지만, 치매행의 연작시만큼 독자의 마음에 다가오는 연작시는 처음인 것 같다. 이 시집에 영광과 행운이 있기를 기원하면서…….

- 정일남(시인) / 2017. 6.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