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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가는 길 - 치매행致梅行 · 187 / 이동훈(시인)

洪 海 里 2017. 7. 9. 18:16



집으로 가는 길

- 치매행致梅行 · 187


洪 海 里




어쩌다 실수로 아내의 치매약을 먹었습니다

그날 밤 꿈속에서

하염없이 거리를 헤맸습니다


집으로 가는 방향을 찾지 못하고

걸어다니는 일도

차를 타는 것도 다 잊은 상태

아무것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허우적허우적거리다

때로는 허공을 날기도 했습니다


며칠 전 길을 잃고 헤맨 아내

그 뒤를 쫓아다녔는지도 모릅니다

여덟 시간 미아가 되었던 아내의 긴 세월을

하룻밤 꿈으로 대신했나 봅니다


아내의 치매약으로

다른 한세상을 구경한 내가

약도 없는 치매환자가 되어

환한 대낮에 길을 잃고 허청댑니다


한세월하지 못하고 허둥대는 나

한술 더 떠 길을 찾지 못하고 헤맵니다

집은 어디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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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를 읽으면서 영화 한 편, 그림 한 편이 연상되었다.

   영화는 ‘집으로 가는 길(장예모 감독, 1999)’이다. 시 제목과 일치한 데서 우연히 떠올려진 것이다. 그렇긴 해도 홍해리 시인 역시, 남자 주인공처럼 반듯한 외모에 교사 시절을 지나왔으니 영화 속 부부가 그랬듯이 풋풋한 연애와 서로 간의 존경과 사랑이 컬러로 채색된 시절이 있었으리란 생각도 든다. 영화는 남편의 장례를 준비하는 현재 장면이 오히려 흑백으로 처리되는데, 아내가 치매 판정을 받고 집을 나서서 미아가 되기도 한 시인의 가정사도 이전의 컬러 빛이 빠지며 담담해지지 않았을까, 그렇게 넘겨짚어 보기도 하는 것이다. 물론, 다 큰 미아가 되기도 했던 아내는 이전보다 자유로워지고 더 천진난만해지기도 했을 테지만 시인과 가족은 그만큼 더 어두워져서 마음을 졸일 때가 많을 것이다.

   두 번째 연상된 그림은 샤갈의 <산책>(1917)이나 <마을 위>(1914-18)다. 연인 벨라를 포옹하거나 손을 잡으면서 하늘을 나는 장면인데, 치매약을 먹고 그날 꿈속에서 거리를 헤매고 허공을 날기도 했다는 데서 연상이 되었을 것이다. 샤갈이 고향에 돌아와 안정을 취하며 사랑에 빠진 그 즈음의 모습을 그렸다면, 시인은 실수로 치매약을 먹을 정도로 피곤한 상태에서 꿈속에조차 가위눌리고 또 그런 과정을 통해 아내를 더 이해하려는 마음을 보여준다.

   영상이나 그림이 밝다고 해서 다 밝은 것도 아니고 시가 어둡다고 해서 다 어두운 것도 아니다. 행복해 보이는 그림 뒤에 불안의 그늘이 없는 것도 아니고, 쓸쓸하거나 슬픈 대목이라 해서 반짝이는 행복이 없는 것도 아니다. 장예모는 영화로, 샤갈은 그림으로, 시인은 시로 생의 한때를 잘도 포착해 두었다. 다 다르지만 사랑을 기억하는 방식의 차이로 메모해 둔다. 집으로 가는 길에 정해진 약도는 없다.

             - 이 동 훈(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