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
홍해리
산책은 산 책이다
돈을 주고 산 책이 아니라
살아 있는 책이다
발이 읽고
눈으로 듣고
귀로 봐도 책하지 않는 책
책이라면 학을 떼는 사람도
산책을 하며 산 책을 펼친다
느릿느릿,
사색으로 가는 깊은 길을 따라
자연경自然經을 읽는다
한 발 한 발.
- 시집 『독종』, 북인, 2012
할 수 있으면 가볍게 발을 떼려고 한다. 둔한 몸이지만 마음을 가뿐히 내리지 않으면 안 된다. 산책이 산 책이 되려면 무엇을 찾고자 하는 의무감을 먼저 벗어야 한다. 자리를 떠나고 새로운 경치가 눈에 드는 것도 좋은데, 한 발 한 발 짐 하나 덜어내는 홀가분한 걸음이 더 좋다.
그리하여 내 산책은 주로 저녁 걸음이다. 아무것도 채우지 않은 아침 발걸음이 설레기도 하겠지만, 종일 묻은 때 씻어내는 방법으로 으뜸이다. 이처럼 묵은 생각을 느릿느릿 놓고 가는 마음이 산책의 원래 모습인지도 모른다. 그런 다음 뜻밖에 살아있는 경을 만나 읽는 날이 있다.
출처 : 금강하구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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