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평론·시감상

[스크랩] 금강하구사람 / 우화羽化(홍해리)

洪 海 里 2017. 7. 13. 08:14

우화羽化

 

                홍해리

 

 

바닥을 본 사람은

그곳이 하늘임을 안다

위를 올려다보고

일어서기 위해 발을 딛는 사람은

하늘이 눈물겨운 벽이라는 것을

마지막 날아오를 허공임을, 알고

내던져진 자리에서

젖은 몸으로

바닥을 바닥바닥 긁다 보면

드디어,

바닥은 날개가 되어 하늘을 친다

바닥이 곧 하늘이다

 

 

           - 시집 독종, 북인, 2012

 

 

 

  며칠 아무것도 되지 않는 날 바닥으로 가라앉는다. 말하자면 시도 무엇도 만나지 못한 채 빈속을 채울 무언가를 찾다가 엎드린 거기, 바닥이 맞다. 몸이 바닥에 닿았으니, 바닥을 보았으니 이제는 일어서기 위해 손을 짚어야 하는데

 

  어쩌다가 나는 엎드린 자리에 내려온 시를 읽는다. 시집을 펼쳤다가, 바닥이 되어본 사람의 편지를 받는다. 젖은 바닥에서 바닥바닥 깃을 터는, 진리를 이제야 발견하다니. 그동안 나는 뜬구름으로 떠도는 시, 바람처럼 사라지는 노래를 붙잡으려고 애썼던 것이다.

 

  바닥에서 일어난 말씀으로 하늘에 오르는 경험을 한 적 없으나 오늘 만난 시가 가슴에 들어온 건 확실하다. 시를 읽은 하루가 또 하루를 잇고, 아무것도 해내지 못한 날에도 한 편의 시로 연명할 수 있겠다는 예감이 든다.

출처 : 금강하구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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