짓는다는 것
- 치매행致梅行 · 158
홍해리
반달 하나 하늘가에 심어 놓고
눈을 감은 채 바라다봅니다
먼 영원을 돌아 달이 다 익어
굴러갈 때가 되면
옷 짓고 밥 짓고 집 지어
네 마음 두루두루 가득하거라
내 눈물 지어 네 연못에 가득 차면
물길을 내 흘러가게 하리라
사랑이란 눈물로 씻은
바람과 햇빛 같은 것 아니겠느냐
아내여, 네 웃음에 나도 따라 짓지만
어찌하여 그것이 이리도 차고 아픈가.
- 시집 『매화에 이르는 길』, 움, 2017
나는 아무것도 짓지 못한다. 늘 아내가 짓는다. “옷 짓고 밥 짓고 집 지어” 나를 살린 아내다. 나는 다만 아내가 내게 오기까지 서러운 이야기 돌아보다가 눈물지을 뿐인데, 그마저 아내는 얼른 웃음 지어 덮어버린다.
돌아보니 “눈물로 씻은” 날들이다. 못난 사람과 여기까지 건너온 세월 풀어놓자면 눈물이 강물이다. 그 강물 끝에 이르고도 여전히 아무것도 하지 못할 것이다. 마지막 날에도 차마 나는 ‘옷도 밥도 집도’ 지어줄 수 없을 것 같다.
짓는 일은 아내 몫이었기에, 나 홀로 무엇을 짓는다면 얼마나 슬플까. 첫날 금강하구 노을에 기대어 칼국수를 먹은 기억만으로 눈물이 날 것이다. 어둠 걸린 강둑길을 돌아 나오다가 달맞이꽃에 멈춰 “반달 하나 하늘가에 심어 놓고” 울컥하여 고개를 돌릴 것이다.
출처 : 금강하구사람
글쓴이 : 금강하구사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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