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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금강하구사람 / 저무는 가을 - 치매행致梅行 · 200(홍해리)

洪 海 里 2017. 7. 22. 17:18

저무는 가을

          - 치매행致梅行 · 200

 

                         홍해리

 

 

이제는 덜 보라고 눈이 침침해지니

하늘은 더욱 높고

세상은 더 넓기만 합니다

덜 듣고 살라고 귀 먹먹해지고

적게 먹으라고 이도 닳아 빠지고

사색 좀 하라고 새벽잠은 날아가고

체력 떨어지니 자꾸 움직이라고

날씨가 이리 좋습니다

세월을 버리면서

쌓아 올리는 나이탑 따라

저문저문 저무는 가을날입니다

아내는 아직 눈도 밝고 귀도 좋은데

보긴 보는데 무얼 보는지

듣긴 듣는데 무슨 소릴 듣는지

웃다 화를 내다 또 웃으니

도무지 알 수가 없습니다

아내와 나의 가을이 너무 멀어

까무룩이 저무는 하늘과 땅입니다.

 

 

            - 시집 매화에 이르는 길, , 2017

 

 

 

  하늘은 높고 땅은 넓은데, 참 많은 것에 매여 살았다. 그동안의 시력은 다만 보지 않아도 될 것에 밝았다. 이제는 눈 가리고, 잡다하게 걸어둔 천지의 섭렵을 지울 시간이다. 세상에는 많은 말이 있고 개중에 말 같지도 않은 말이 있으니 판단의 기로에서 늘 고단했다. 비로소 걸러 듣는 귀를 얻은 사람은 육의 욕심 대신 영의 빈곤을 채우며 산다.

 

  그가 읽어내야 하는 또 하나의 경지는 바로 옆에 있다. 미루어 짐작할 수 없는 저녁, “도무지 알 수가 없는 가을이 거기 있다. 아내가 웃고 우는 것은 구차한 과거의 학습 따위를 벗으려는 몸짓이다. 화려한 꽃으로 피었던 낮의 환영도 사그라진 저녁에는 애써 천지를 구별할 필요가 없다. 가을 하늘 땅에 앉은 아내가 한 번 흔들리고 톨톨 구른다.

출처 : 금강하구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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