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소를 지우다
- 치매행致梅行 · 11
홍해리
소식을 보내도 열리지 않는 주소
아내의 이메일을 지웁니다
첫눈은 언제나 신선했습니다
처음 주소를 만들 때도 그랬습니다
첫눈에 반하는 것도 그렇습니다
내 눈을 사로잡은 아내의 처녀
아직도 여운처럼 가슴에 애련哀憐합니다
이제는 사막의 뜨거운 모래 위
떨어지는 물방울 같은 내 사랑입니다
열어 보고 또 열어 봐도
언제부턴지 받지 않는 편지를 쓰는
내 마음에 멍이 듭니다.
- 시집 『치매행 致梅行』, 황금마루, 2015
사랑의 거처 한쪽이 지워졌다. 처음의 기억이 사라진다는 것은 사랑이 불처럼 일고 물처럼 불어나도 더는 머물지 못한다는 말이다. 첫 느낌은 이제 어디로 가는가. 여운, 여운은 여전하여 고요를 깨뜨리다가도 이내 고요에 빠져들고 만다.
답장이 없기 때문이다. 버릇처럼 쓰는 편지가 안쓰럽다. 아내를 불쌍히 여겨 또 쓰고 마는 편지는 늘 허공에 떠 있다. 주소를 지우고, 편지는 이제 어디로 갈까. 멍이 든 편지를 시로 받는다. 옆에 슬픔이 배달되는 우체통 하나 놓아야겠다.
출처 : 금강하구사람
글쓴이 : 금강하구사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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