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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금강하구사람 / 안개 - 치매행致梅行 · 13(홍해리)

洪 海 里 2017. 8. 22. 04:57

안개

      - 치매행致梅行 · 13

 

                         홍해리

 

 

안개가 짙어 앞이 보이지 않습니다

앞이 안 보이니 길이 없습니다

너에게 내가 없고

내게 네가 없습니다

한평생 누구에게나 가지 못한 길이 있고

앞으로도 뒤로도

가지 못할 길이 있습니다

쉬운 길도 편한 길도 있었지만

먼 길을 돌아, 이제

자갈길 가시밭길에 들어섰다 생각해도

길은 안개에 갇혀 가물거리고 있습니다

빛이 너무 밝으면 눈이 부셔

앞이 보이지 않듯

안개가 짙으면 길이 보이지 않아

청맹과니 하나 칠흑 속을 헤매고 있습니다.

 

 

          - 시집 치매행 致梅行, 황금마루, 2015

 

 

 

  안개가 앞을 가로막았습니다. 이런저런 길을 돌아 여기까지 왔는데, 이제 사람과 사람 사이에 낀 안개랍니다. 곁에 있다는 위로를 알지 못하는 이, 그 사람을 안쓰럽게 바라보는 이의 눈을 생각합니다. 분명히 앞에 있으나 예전 그 사람이 아니어서 가슴 아픕니다. 예전 그 사람이 아니지만, 여전히 사랑하는 사람이어서 더 슬픕니다.

 

  사람을 가까이 두고 더듬어도 붙잡지 못하는 안개라니요. 유리창에 성에가 낀 것처럼 당신은 생각 너머 창밖에 서 있습니다. 다가가 손으로 문질러도 금방 흐릿해지는 얼굴입니다. 그곳에서 허둥거리는 모습에 나도 덩달아 중심을 잃고 맙니다. 어쩌다 한 번 당신이 맑아지는 날이 와도 우리 생각이 함께 앉았던 자리는 비어 있습니다.

출처 : 금강하구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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