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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금강하구사람 / 팔베개 - 치매행致梅行 · 65(홍해리)

洪 海 里 2017. 8. 23. 04:42

팔베개

       - 치매행致梅行 · 65

 

                             홍해리

 

 

아기가 엄마 품에 파고들 듯이

아내가 옆으로 들어와 팔베개를 합니다

그냥 가만히 안고 있으면

따뜻한 슬픔의 어깨가 들썩이다 고요해집니다

깊은 한숨 소리 길게 뱉어내고

아내는 금방 곯아떨어지고 맙니다

마른 빨래처럼 구겨진 채 잠이 듭니다

꽃구름 곱게 피어날 일도 없고

무지개 뜰 일도 없습니다

나도 금세 잠 속으로 잠수하고 맙니다

의 무게가 얼마나 되는지 헤아려 보다

가벼워도 무거운 아내의 무게에

슬그머니 저린 팔을 빼내 베개를 고쳐 벱니다.

 

 

          - 시집 치매행 致梅行, 황금마루, 2015

 

 

 

  종일 아내는 말 없는 말을 합니다. 숨겨둔 말을 깊은 한숨으로 내놓습니다. 지난 사연을 덜어내다가 남은 몇 마디는 허공에 띄웁니다. 말을 비운 아내는 낮게 내려와 작아진 채 품에 들어옵니다. 비로소 하루 무게를 빼낸 몸이 고요에 들어갑니다. 아내를 안고 있다가 문득, 내 몸에도 걸려있는 생의 무게를 감지합니다.

 

  우리는 이제 서로 얼굴을 보고 꿈을 꾸지 않습니다. 꿈꾸는 대신 위로의 시간이 다가온 것입니다. 버석거리는 자리에 꽃을 피울 수 있을까, 우리의 지붕에 무지개가 뜰 수 있을까 생각하지 않습니다. 말을 놓아버리고 윤기 잃고 쪼그라진 아내를 품에 안을 뿐입니다. 아내와 함께 건너온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아득합니다.

출처 : 금강하구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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