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산홍 한 분
- 치매행致梅行 · 93
홍해리
오늘은 아내가 조그만 화분을 들고 왔습니다
유치원에서 꽃을 심는 실습을 했나 봅니다
활짝 핀 영산홍이 앙징스럽습니다
눈물이 왈칵 솟구치는데
편지 한 장이 가지 사이에서 피어납니다
나는 이제까지 꽃을 보지 않았습니다
한때 아내는 한 송이 아름다운 꽃이었지만
그것도 모르고 나는 한평생을 살았습니다
늦둥이 같은 환한 꽃 한 분
이제사 꽃거울에 나를 비춰봅니다
활짝 핀 꽃이 반짝반짝 웃고 있습니다.
- 시집 『치매행 致梅行』, 황금마루, 2015
사랑하는 마음은 숨길 수 없다는데,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표현하지 못한다면 이보다 안타까운 일이 없다. 사랑하는 이를 옆에 두고도 기억하지 못하는 건 어떤가. 그를 잊었다가 순간 가슴에 들어오는 느낌은 어떨까.
잠깐 꽃의 마음이 되어 전하는 편지는 그래서 더 절실하다. 이 마음을 이제 뭐라고 부를까. 꽃은 그대로 웃고 있는데, 무슨 말이 더 필요한가.
출처 : 금강하구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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