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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금강하구사람 / 비밀(홍해리)

洪 海 里 2017. 8. 28. 17:37

비밀

 

               홍해리

 

 

그 여자 귀에 들어가면

세상이 다 아는 건 시간문제다

조심하라 네 입을 조심하라

그녀의 입은 가볍고 싸다

무겁고 비싼 네 입도 별수없지만

혼자 알고 있기엔 아깝다고

입이 근지럽다고

허투루 발설 마라

말끝에 말이 난다

네 말 한 마리가 만의 말을 끌고 날아간다

말이란 다산성이라 새끼를 많이 낳는다

그 여자 귀엔 천 마리 파발마가 달리고 있다

말은 발이 없어 빨리 달린다, 아니, 난다

그러니 남의 말은 함부로덤부로 타지 마라

말발굽에 밟히면 그냥 가는 수가 있다

그 여자 귓속에는 세상의 귀가 다 들어 있다

그 여자 귀는 천 개의 나발이다

그녀는 늘 나발을 불며 날아다닌다

한번, 그녀의 귀에 들어가 보라

새끼 낳은 늙은 암퇘지 걸근거리듯

그녀는 비밀肥蜜을 먹고 비밀秘密을 까는 촉새다

'이건 너와 나만 아는 비밀이다'.

 

 

                   - 시집 비밀, 우리글, 2010

 

 

 

  생각해보니 내가 그 여자. 입 쉽게 여는 그 여자가 맞다. 사실 이것도 비밀인데, 내가 뱉은 말이 말처럼 뛸 줄 몰랐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원래 내 생각은 깊고 푸른 심연에 잠겨 놀던 것이다. 거기 몸을 맡기면 기대하지 않은 풍요로 눕고 여유로운 헤엄으로 저녁에 닿는다. 우연히 뭍으로 고개를 내밀고 귀를 여러 개 가지게 되기 전까지는 그랬다는 말이다.

  수많은 말을 담아 살진 말은 밖으로 나가고 싶어 안달이다. 적으면 기껏해야 한 뼘도 안 되는 분량의 말이 자꾸 새끼를 치는 것이었다.

 

  오늘 또 한 번의 발설에 뒤가 가려운데, 그래도 지금 받은 말은 다듬고 다듬어진 시 한 편이라, 그걸 그대로 흉내 낸 것뿐이라는 핑계로 적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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