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
홍해리
그 여자 귀에 들어가면
세상이 다 아는 건 시간문제다
조심하라 네 입을 조심하라
그녀의 입은 가볍고 싸다
무겁고 비싼 네 입도 별수없지만
혼자 알고 있기엔 아깝다고
입이 근지럽다고
허투루 발설 마라
말끝에 말이 난다
네 말 한 마리가 만의 말을 끌고 날아간다
말이란 다산성이라 새끼를 많이 낳는다
그 여자 귀엔 천 마리 파발마가 달리고 있다
말은 발이 없어 빨리 달린다, 아니, 난다
그러니 남의 말은 함부로덤부로 타지 마라
말발굽에 밟히면 그냥 가는 수가 있다
그 여자 귓속에는 세상의 귀가 다 들어 있다
그 여자 귀는 천 개의 나발이다
그녀는 늘 나발을 불며 날아다닌다
한번, 그녀의 귀에 들어가 보라
새끼 낳은 늙은 암퇘지 걸근거리듯
그녀는 비밀肥蜜을 먹고 비밀秘密을 까는 촉새다
'이건 너와 나만 아는 비밀이다'.
- 시집 『비밀』, 우리글, 2010
생각해보니 내가 “그 여자”다. 입 쉽게 여는 그 여자가 맞다. 사실 이것도 비밀인데, 내가 뱉은 말이 말처럼 뛸 줄 몰랐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원래 내 생각은 깊고 푸른 심연에 잠겨 놀던 것이다. 거기 몸을 맡기면 기대하지 않은 풍요로 눕고 여유로운 헤엄으로 저녁에 닿는다. 우연히 뭍으로 고개를 내밀고 귀를 여러 개 가지게 되기 전까지는 그랬다는 말이다.
수많은 말을 담아 살진 말은 밖으로 나가고 싶어 안달이다. 적으면 기껏해야 한 뼘도 안 되는 분량의 말이 자꾸 새끼를 치는 것이었다.
오늘 또 한 번의 발설에 뒤가 가려운데, 그래도 지금 받은 말은 다듬고 다듬어진 시 한 편이라, 그걸 그대로 흉내 낸 것뿐이라는 핑계로 적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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