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벌레
홍해리
몸으로 산을 만들었다
허물고,
다시 쌓았다
무너뜨린다.
그것이 온몸으로 세상을 재는
한평생의 길,
山은 몸속에 있는
무등無等의 산이다.
- 시집 『비밀』, 우리글, 2010
잰다는 말에 오래 머뭇거린다. 더구나 “온몸으로 세상을 재는” 일이라니. 이제부터 내가 걸어온 흔적을 돌아보라는 말이다. 아니 지금부터 세상을 신중하게 건너라는 숙제를 받은 셈이다. 내가 짚는 공간에 진짜로 접촉하는, 몸 한 토막이 귀하게 여겨진다. 더는 토막 낼 수 없는 몸이기에 내 몸 전부가 한 토막이 되어 잰다, 던진다. 한 번은 꿰고 한 번은 덜고, 살아있는 동안 반복이다.
나는 사실 절대적 눈금을 가지지 않았다. 그날 몸 상태에 따라 짧기도 하고 길기도 하다. 육신의 자도 그렇고 생각의 자도 수시로 변한다. 고요 한쪽이 몸을 누르다가도 금세 수런수런 일어나기 일쑤다. 그러고 보면 나는 세상을 재는 게 아니라 스스로 재는 일과다. 쌓았다가 내려앉는 일이 겨우 내 몸 변화를 감지하는 짓이어서 부끄럽다. 이것도 귀찮으면 내게 부여된 세상도 끝이다.
출처 : 금강하구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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