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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다섯 노 시인의 아내 사랑 이야기 洪海里 시인, 제20시집『매화에 이르는 길』

洪 海 里 2017. 9. 20. 16:29

[경암 이원규의 북카페] / 일간경기 2017. 09. 18.


일흔다섯 노 시인의 아내 사랑 이야기

洪海里 시인, 제20시집『매화에 이르는 길』

  • 이원규 기자

  어느 날 갑자기 아내에게 치매가 왔다. 시인에게는 청천벽력이요 세상의 중심축이 바뀌는 큰 충격이었다. 믿기 어려웠던 시인은 ‘치매(癡呆)가 아니라 치매(致梅)’라고 했다. 매화에 이르는 길, 무념무상, 순진무구한 어린아이가 되는 거라고 단어의 뜻을 바꾸고 아내를 바라보며 시를 쓰기 시작했다. 지금, 시인에게 가장 소중한 건 아내뿐이다. 서로 다른 반쪽끼리 만나 하나가 되어 살아온 지 어언 45년, 함께 나누었던 희로애락이 한꺼번에 무너지는 충격이었다. 아내가 없는 시인의 삶은 생각조차 못 했고, 있을 수도 없는 일이다.

 

  "뭐라 하면 알아듣는 것인지 / 눈을 끔벅끔벅 깜박이다 감아 버립니다 // 나를 원망하는 것인지 / 내가 불쌍하다, 한심하다는 것인지 // 종일 말 한마디 없는 / 아내의 나라는 대낮에도 한밤중입니다 // 말의 끝 어디쯤인가 / 달도 오르지 않고 별도 반짝이지 않는 // 그곳을 혼자 떠돌고 있는 것인가 / 오늘도 아내는 말 없는 말로 내게 속삭입니다." 이번 9월 초에도 치매를 앓는 아내에게 바치는 안타까운 사랑 고백인「침묵의 나라 -치매행致梅行 · 281」전문이다.

 


  홍해리 시인은 충북 청주에서 출신으로 고려대 영문과를 졸업 후, 서울 강북구 우이동에서 자리를 잡았다. 1969년 시집『투망도』로 등단했으며, 지난해에 펴낸『바람도 구멍이 있어야 운다』 는 제19시집이며,『매화에 이르는 길』은 치매에 걸린 아내를 간호하며 기록으로 남기며 쓴 제18시집『치매행』의 제2부 형식이고, 노 시인의 스무 번째 시집이기도 하다. 시집이 나오기도 전부터 시인은 전국의 치매 환자 요양시설의 주소까지 파악했단다. 임채우 시인은 “시인님께서는 그 와중에도 혈서를 쓰고 있었습니다. (…) 그 어떠한 시보다도 진실하고 감동적이며 깊이가 있는 절창입니다.”라고 발문에서 밝혔다. 아내에게 바치는 노 시인의 안타까운 마음은 이 땅의 치매 환자 80여만 명을 돌보는 가족은 물론이고 수많은 독자의 심금을 울리고 있다.

 

  벌써 3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이야기의 실마리가 풀린다. 1986년 우이동 인근에 살던 홍해리 시인을 비롯한 이생진, 채희문, 임보 시인 등이 ‘생명과 자연과 시’로 의기투합해 <우이동 시인들>이란 동인회를 결성했다. 시와 음악이 어우러지는 시낭송회와 월간 문예지도 만들었다. 헤밍웨이처럼 하얀 수염을 멋지게 다듬어 기르는 홍해리 시인은 청바지를 즐겨 입는 만년 열혈청년이다. 1987년부터 30년 이상을 단 한 차례도 빠짐없이 참여하고 이끄는 리더이다.

 

  <우이시낭송회>는 매월 마지막 토요일 3시에 도봉도서관에서 정기적으로 열린다. 이번 9월 시낭송회가 351회째이다. 마지막 토요일이 추석 연휴가 시작되는 30일이라서 9월 23일로 어쩔 수 없이 한 주 앞당겼단다. 지난 8월말에는 ‘2017 우리詩여름시인학교’를 충북 제천시 청풍면 청풍유스호스텔에서 성황리에 마무리했다. ‘시와 시인을 만나다’라는 표어 아래 1박 2일 동안 전국 각처에서 모인 시인과 독자들 120여 명이 시 창작 강의, 시 낭송, 노래와 장기자랑, 우리詩바자회, 우리詩백일장 등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만족도를 한층 더 높였다.

 

  "너의 고향은 하늘이었느냐 / 어쩌다 지상으로 추락하여 / 잃어버린 날개로 날아오르며 / 그리움의 향기로 꽃을 피우느냐 / 해오라비난초 잠자리난초 나비난초 / 제비난초 갈매기난초 방울방울 방울새란 / 병아리난초 나나벌이난초 새우난초 / 닭의 난초여 닭의 난초여 아름다운 네 모습 / 저 무한천공에서 우주와 영혼을 노래하고 / 영원을 향해 날아올라라"

박이제 작곡, 소프라노 고선애가 불러 널리 알려진 가곡「저 무한천공으로」의 한 대목이다. 일흔다섯 노 시인의 지고지순한 순애보, 애절한 사랑 노래는 가을 하늘처럼 높고 또 맑아 절절하게 가슴을 파고들며 울린다. 이번 시집『매화에 이르는 길』에 실렸던 230번 이후에도 치매행은 계속 진행 중이다. 노 시인의 간절한 희망은 아내가 치매에서 벗어나는 것, 오늘도 마른 눈물을 찍어 또 한 편의 시로 지은 치매행 282번을 날려 보냈다, 훨훨~



이원규 기자  lwk@1g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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