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選集『洪海里는 어디 있는가』(2019)

금강초롱

洪 海 里 2018. 12. 15. 06:52

금강초롱

 

 

洪 海 里

 

 

 

초롱꽃은 해마다 곱게 피어서

 

금강경을 푸르게 설법하는데

 

쇠북은 언제 울어 네게 닿을까

 

내 귀는 언제 열려 너를 품을까.

 

 

* 금강초롱 : http://blog.daum.net/j68021에서 옮김.

 

너를 향해 열린 빗장 지르지 못해

 

부처도 절도 없는 귀먹은 산속에서

 

꽃초롱 밝혀 걸고 금강경을 파노니

 

내 가슴속 눈먼 쇠북 울릴 때까지.

 

 

 - 시집『독종毒種』(2012. 북인)

 

 

  * 시「금강초롱」을 읽으면 ‘사랑’ ‘번민’ ‘고뇌’ ‘수양’ ‘인내’ ‘해탈’······ 등의 단어가 떠오르는데, 이런 단어에는 다분히 종교적 색채가 묻어난다. 금강초롱꽃을 보는 화자의 시선이 어느 곳에 머물러 있을지 추측되는 부분이다.

  평생을 시와 가까이 지낸 시인은 시를 쓰는 것으로 자신을 수없이 닦았으리라 짐작된다. 자신을 닦는다는 것은 물론 수양을 나타내므로, 이는 과거에 대한 반성과 현재에 대한 성찰 그리고 미래에 대한 다짐이 끊임없이 이어졌을 것으로 이해된다.

  구도자적 자세를 가진 사람이 바로 詩人일 것이라는, 홍해리 시인과 절친한 임보 시인의 글을 읽은 적이 있지만, 시「금강초롱」을 읽어보면 홍해리 시인이 바로 그런 모델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든다.

 

  ‘너를 향해 열린 빗장’을 감추지 못하지만 화자는 지금 고립되어 있다. 고립이 물리적 공간이 아닌 정신세계라고 해도 문제되지 않는다.

  그런데 시에 등장하는 ‘너’는 누구일까? ‘너’가 이성적 대상이든, 추구하는 가치관이든, 이루고 싶은 목표이든 큰 차이는 없다. 중요한 것은 “열린 빗장 지르지 못”한다며 상대를 향한 마음을 감추지 않고 드러내는 것이다. 드러나는 것이 부끄럽지 않다는 의미이다.

  반대로 ‘너’ 또는 ‘너’를 생각하는 마음이 부끄럽지 않을 만큼, 떳떳하지 못한 대상이라 해도 마찬가지다. “부처도 절도 없는 귀먹은 산속에서” 고립이라는 대가를 치루는 것으로 지난날 과오를 반성하는 것이고, 또한 마음을 다스리며 행동을 절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잘못된 욕구를 절제하느냐 못하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 누구에게나 잘못된 욕구는 있다. 그 욕구를 숨기고 내숭떠는 것보다 솔직한 마음을 고백하고 자신의 행동을 제어할 수 있는 사람이 큰 사람이다. 그런 사람은 수양이 경지에 다다른 것으로 봐도 될 것이다.

  화자는 지금 그 목표를 향하고 있다. “내 가슴속 눈먼 쇠북 울릴 때까지.”라는 결구는, 큰 깨달음은 멀리 있다 해도 가서 닿을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으로 정진하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고립으로부터 얻은 선물이다. 시 「금강초롱」에서 고립은 자의로 비롯된 것으로 느껴지지만 고립이 자의든 타의든 크게 다를 것도 없다. 고립으로부터 발생되는 많은 사색은 숙성을 동반할 것이고, 숙성은 자제력을 선물할 것이기에 그렇다.

  그런 숙성은 시작詩作활동에서도 경험하게 된다. 사유思惟가 바탕이 되는, 시라는 창작물을 만드는 과정에서 하게 되는 많은 생각은 시인을 구도자적 길로 안내하기도 할 것이니 말이다. 이는 시를 써 본 사람은 대부분 경험했을 것으로 짐작한다. 그런 길에서 어쩌면 좋은 시를 품을 수도 있을 것이고 ‘쇠북’ 소리를 들을 수도 있을 것이다.


  서두에서 팔색조와 같은 시를 말했지만, 사실 시의 본질은 이미 팔색조에 가깝다. 시의 요건을 갖춘 글이란 대부분이 다의적 언어조합의 시적 특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으로 그 이유를 대신한다. 이것은 시를 읽고 그 감상을 쓰는 필자로서의 변명이기도 하겠지만, 같은 시를 자신과 다르게 읽는 것을 보는 것에서 증명이 되는 셈이다.

  다만 같은 시에 모든 사람이 다 감동받는 것은 아니다. 여기서 비롯되는 생각은 의미가 넓고 깊다면 감동의 진폭 역시 그렇지 않을까 라는 것이다. 나 외에 또 어떤 사람이 「금강초롱」을 유심히 읽었다면 분명 그 가능성은 더 높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연시戀詩 같으면서도 ‘번민’과 ‘고뇌’가 묻어나는 「금강초롱」이니 분명 그럴 것이다.

     - 박승류(시인)

 

   * 고개 숙여 종일 글자만 들여다보다가 문득 저 멀리 말씀 한두 마디 달고

초롱초롱 눈 밝히는 꽃 이야기를 듣고는 산속 잊혔던 그 숲에 살던 기억 살아나

늘 나를 열고 너를 기다리는 이유로 빗장 지르지 못하던 숲, 그 숲의 설법 피어나

내 머무는 곳에서는 그보다 더 간절한 고백 없었고 깊은 산속에서 몸을 구부려

귀먹고 눈멀어 더듬는 쇠북 참 오래된 소원을 읽었네.

   - 금 강.

 

 * 2010년 여름에 홍해리 이시장님이 보내주신 시집 『비밀』의 「명창정궤明窓淨几의 시를 위하여」라는 ‘시인의 말’과 시선집『시인이여 시詩인이여』의 ‘시로 쓴 시론’「고운야학孤雲野鶴의 시를 위하여」는 내 길을 밝히는 등불이 되었다. ‘시인이 실천해야 할 지침이다.’ ‘시인의 길을 밝히는 시 철학이다.’ 라고 생각하며 시집을 읽었다. 행과 연의 계단을 오르며 시 세계에 뜨는 보름달을 만난다. 그 밝은 보름달 속에서 환희의 눈을 뜨며 시 세계를 여행하는 꿈을 꾼다. 긴 밤을 짧게 보내면서….

〈우리詩 시인선〉의 꽃시집『금강초롱』의 표제가 되는 시 「금강초롱」을 읽으면 홍해리 시인의 시안은 무한 공명이요, 천리안으로 보는 무지개 물방울의 빛의 굴절을 볼 수 있다. 작가의 시안과 시혼이 어우러지는 서정의 결정체가 너무나 아름다워 마음에 새기고 늘 꺼내 읽는다.


1

초롱꽃은 해마다 곱게 피어서

금강경을 푸르게 설법하는데

쇠북은 언제 울어 네게 닿을까

내 귀는 언제 열려 너를 품을까.

2

너를 향해 열린 빗장 지르지 못해

부처도 절도 없는 귀먹은 산 속에서

꽃초롱 밝혀 걸고 금강경을 파노니

내 가슴속 눈먼 쇠북 울릴 때까지.

홍해리 시인의 「금강초롱」의 전문이다.

위의 시는 지식으로 분석하여 감상할 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독자의 시안의 깊이와 범위에 따라 수만 가지 감정을 포착하는 경서經書를 안내하는 서시序詩가 분명하리라. 내 가슴 눈먼 쇠북을 시를 읽으며 울리고 있다. 부처도 절도 없는 귀먹은 산속에서 피었다 지는 금강초롱 내 가슴에서 피우고 있다. 누구를 위한 설법인지 쇠북소리로 시를 읽는다.

한 생을 살면서 무엇에 눈을 뜨며 사는 것이 최선의 행복인가. 때묻지 않고 고고하게 사시는 시우님들이 보내 주시는 시집을 읽으며 노안의 눈을 비비고 시안을 밝힌다. 시가 세상을 평정하는 시상詩想의 세상을 꿈꾸며, 눈뜨다 눈감는 짧은 일생을 고운 시정 속에서 살아간다. 아름다운 저녁노을길이 끝날 때까지...

ㅡ 이재부, 월간 『우리詩』 2016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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