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選集『洪海里는 어디 있는가』(2019)

물의 뼈

洪 海 里 2018. 12. 20. 04:42

물의 뼈

 

洪 海 里

 



물이 절벽을 뛰어내리는 것은
목숨 있는 것들을 세우기 위해서다


폭포의 흰 치맛자락 속에는
거슬러 오르는 연어 떼가 있다


길바닥에 던져진 바랭이나 달개비도
비가 오면 꼿꼿이 몸을 세우듯


빈 자리가 다 차면 주저없이 흘러내릴 뿐
물이 무리하는 법은 없다


생명을 세우는 것은 단단한 뼈가 아니라
물이 만드는 부드러운 뼈다


내 몸에 물이 가득 차야 너에게 웃음을 주고
영원으로 가는 길을 뚫는다


막지 마라
물은 갈 길을 갈 뿐이다.

 

- 시집『황금감옥』(2008, 우리글)



   * 언젠가 시인들이 모이는 자리에서 시는 선인가, 악인가를 주제로 갑론을박하는 모습을 보았다. 내 생각은 선이라 주장하는 것도 무례하고 악이라 주장하는 것도 겁난다. 선을 추종하다 보면 선 아닌 다른 것을 정죄해야 하겠고, 악이라 단정 지으면 세상은 더 이상 희망이 없는 거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시가 사람을 살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죽은 나무에서 싹을 틔우고 어둠 속에서 빛을 터트리는 것은 오직 시인만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은가, 홍해리 시인의 시를 읽으면 캄캄했던 이 세상이 조금은 살고 싶어지기도 했던 경험, 나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긍정의 담론. 실제로 시인은 내게 따뜻한 선생님이시기도 하다. 몇 년 전, 누구에게도 속사정을 털어놓을 수는 없었지만, 집안의 우환으로 쫓기듯이 우이동으로 이사를 한 적이 있었다. 그때 시인은 낯선 동네에서 당황하고 있는 나를 ‘우이시’로 인도해 주신 분이다. 그에게 시란 그렇게 이웃과 나누는 성찬이다, 그것이 그의 종교이고 기질이고 또한 이번 생의 업인 듯싶다.

  - 손현숙(시인)


              * 물이 절벽에서 떨어지는 것은 목숨 있는 것들을 세우기 위해서다. 연어 떼가 폭포를 거슬러 오르고,

            길바닥에 버려진 바랭이나 달개비가 비를 맞고서야 꼿꼿이 몸을 세운다. 자연의 순환을 거스르지만 않는

            다면 물은 자신이 아닌 다른 생명을 키우기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는다.

 그러나 물에도 뼈가 있다. 부족하면 채워주고 가득차면 흘러넘치며, 막히면 돌아갈 줄 아는 물에도 뼈가 있는 것이다. 고이면 썩게 되고, 억지로 막으면 박차고 나가는 성질도 있다. 하지만 시인이 말하고자 하는 물의 뼈는 거칠고 날카로운 단단한 뼈가 아니라 물 스스로가 만드는 부드러운 뼈이다.

 사람답다는 것은 투철한 자존감으로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가는 사람일 것이며, 나와 남이 다르지 않다는 자리이타의 이념을 실천하는 사람일 것이다. 성격이 강하면 부러지기 쉽고 약하면 꺾이기 쉽다. 강함은 부드러움으로 다스려야 하는 중용의 원리를 알고 있기에 사람다운 사람살이를 위해서는 부드럽고 올곧은 성품을 스스로 길러야 한다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내 몸에 물이 가득 차야 너에게 웃음을 주고 영원으로 가는 길을 뚫는다고 시인은 말한다. 그리고 물은 빈자리가 다 차면 주저 없이 흘러내릴 뿐, 물이 스스로 무리하는 법은 없다고 말한다.

 이는 사람의 근본을 거스르지 않고 물처럼 살기를 원한다는 뜻이며, 나아가 모든 사람들이 부드럽고 원만한 원래의 성품을 추스르며 유유히 흐르는 물처럼 사람의 본분을 다하자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것이리라.

           - 유 진/ 시인, 첼리스트<선린대학 출강>


   * 홍 시인이 쓴 이 시는 논리적으론 엉망진창이다. 진리와 오류를 대립되게 배치해 놓고 다시 갈라놓을 수 없는 장치를 마련해 놓았으니 병 주고 약 주는 꼴이다. 그러나 진리와 오류를 절묘하게 상존시킨 재주는 인정해 주어야 한다. 논리적인 설명이 불가능한 데도 불구하고 논리성을 확보하였으니.

그래서 ‘안도 다다오’를 불러내고 싶어진다. 그의 머릿속에 오랜 세월 각인되어 있는 ‘뼈’라는 말이 연상되기 때문이다.
  안도 다다오! 일본 사람이다. 1941년 오사카의 서민 동네에서 태어났다. 17세 때, 어려운 집안 형편과 저조한 학과 성적으로 대학진학을 포기한 상태인 그는 동네 체육관에 놀러 갔다가 ‘공부를 안 하고도 돈을 벌 수 있다’는 관장의 꼬임에 빠져 권투에 입문하고 말았다. ‘싸우면서 돈을 벌 수 있다니 이거야말로 멋진 일거양득이다.’ 그는 흥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더욱이 거리에서 거들먹거리는 깡패들을 피하지도 않고 당당히 맞서 단 한방의 주먹으로 초주검을 만들 수 있다니 절로 신바람이 났다. 일전쌍조一箭雙鳥의 실마리를 찾은 자부심은 하늘을 찌를 것 같았다. 그는 세상을 다 얻은 것처럼 한없이 기뻤다.
  그는 피나게 샌드백을 두드리며 프로 권투선수로서의 꿈을 키워나갔다. 그러나 밥만 먹으면 도장에서 권투만 한다는 사실이 온몸을 지겹게 감기 시작했다. 전적은 23전 13승 3패 7무. 전도가 난망한 프로 복서도 아니지만 앞날이 기대되는 화려한 권투선수도 아니었다. 그래서 불투명과 낙관 속에서 전전긍긍하며 좌고우면하다가 진로를 바꾸기로 결론을 내렸다. 이런 권투선수로 살아간다면 허울좋은 하눌타리가 아니라 밥 빌어 먹다가 죽을 쑤어 먹을 놈의 신세를 면할 수 없다고 여긴 것이다. 그럼 ‘무엇을 해야 하나? 무엇이 적성에 잘 맞을까? 내가 하고 싶은 것이 있기나 하나?’ 등등 몇 날 며칠 고심하던 그는 중학교 때 이웃 목수가 자신의 집을 개축할 때 중얼거리던 말을 떠올리며 의미심장하게 되새기기 시작했다. “존재하는 모든 사물은 뼈가 있는 법이지. 집도 뼈가 있어야 해. 그래야지만 오랜 풍상을 견딜 수 있어. 살기도 편하고 영육의 안거도 실팍해지지.” 그리고 이어서 “집을 지을 때는 까치집처럼 지어야 돼. 까치는 뼈를 넣어 집을 짓거든.” 바로 이 말이 전광석화처럼 지나갔다.
  ‘뼈와 까치집’은 평생의 화두가 되었고 ‘까치가 뼈를 넣어 집을 짓는다?’는 의미는 천착의 대상이 되었다.
62년인 21살 때 그는 권투로 번 약간의 돈을 가지고 세계를 누비기 시작했다. 눈물나는 독학이었다. 도무지 앞이 보이지 않는 절망이 찾아오면 링 위에서 상대방의 주먹에 맞아 쓰러지는 상황을 떠올리며. 혹독한 시련을 참고 견뎠다. 우리나라[일본]는 학력사회다. 나처럼 학력이 없는 사람은 연전연패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연패가 두려워 싸움을 그만 둘 수는 없다. 계속 싸우다 보면 열에 한 번쯤은 이길 수 있지 않은가? 그는 좌절하지 않고 도전하였다.
  까치 부부들이 장성한 새끼들을 분가시킬 경우 직접 살림집을 만들기 시작하는데 그때 들이는 공정의 노력은 말로 표현키 어렵다. 나뭇가지를 물어와 올려놓곤 앉아 본다. 불편한 곳이 없는지 확인을 한 다음 만약 있다면 교체를 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다시 위치를 바꾸거나 그럴 형편이 못 되면 서로 나무 끝을 물고 잡아 당기거나 밀거나 구부리는 작업을 하는 것이다. 참으로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그렇게 해서 완성된 집은 새로운 자식 내외의 신혼자리가 된다. 새 보금자리는 높은 곳에 있기에 뱀이 나무를 타고 오르지 못한다. 비가 사흘 내려도 절대 고이는 법이 없다. 바람이 극렬해도 날아가는 일이 없다. 그 어떤 악천후에도 견고 건재하다. 이 광경을 본 그는 그제서야 까치집에 담긴 뼈의 의미를 해독한 것이다.  뼈가 ‘정신 또는 혼’이라는 사실까지.
  그는 쉬지 않고 건축가로서의 욕망을 키워나가며 ’뼈‘를 접목시키려 부단히 노력했다. 그리곤 10평짜리 좁은 땅에 집을 지으며 뜻을 펼치기 시작할 때부터 뼈를 담으려고 노력했다. 비록 좁은 땅, 작은 건물일망정. 대성의 꿈과 뼈를 담아야 한다는 꿈은 서로 견인차 노릇을 하며 결곡한 자세를 불러 일으켰고 드디어  69년 오사카에 건축사무소를 열게 되었다. 거기서 그는 의뢰인도 없는 설계 프르젝트를 꾸준히 내놓으면서 실의를 감내하며 뼈를 심기 위한 꿈을  다듬고 키웠다.
  대학 교육을 받은 적이 없지만 세계의 명문대들은 그를 앞다퉈 초청했다. 87년에 예일대, 88년엔 컬럼비아대, 90년에 하바드대학교 객원교수를 지냈다. 97년부터는 도쿄대 건축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세계의 거장이 되었다.

 그는 “무엇이 좋은 건축인가?”라는 질문에, 이탈리아 로마의 판테온에서 느낀 감정을 예로 들면서 “처음에는 ‘재미난 모양이다’ 두 번째는 ‘위에서 쏟아져 내리는 빛의 아름다움을 나타내고자 했나 보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세 번째는 “거기서 울려 나오는 찬송가 합창을 듣고 가슴이 저며왔다.”라고 말했다. “건축은 그렇게 사람의 심금을 울려야 한다”는 게 그의 결론인데 다시 말하면 판테온에 뼈가 있음으로 인해 심금을 울린다는 사실을 세 번 가서야 알게 되었던 것이다.

   그럼 홍해리 시인의 '물의 뼈'는 어떠한가. 진리를 오류라고 하고 있는 것인가. 오류를 진리라고 고집부리고 있는가? 진리와 오류를 변증법으로 통일한 ‘물의 뼈’는 물리학의 뒤라는 형이상학의 정점에 도달해 있는 종교로 자리매김되어 있는 것이다. 직감, 예감, 육감의 결합인 직관에 의해 사물을 자유자재로 부리는 종심소욕불유구從心所慾不踰矩의 경지에 다다랐으니 물에 뼈가 있음을 어찌 모르겠는가? 판테온을 건립할 때 뼈를 담기 위하여 노심초사했을  장인의 눈에서 모든 철리가 부드러움에 기인하며 아울러 감동 감화는 온유와 사랑에서 비롯된다는 철학을 물의 뼈라는 단어로 증명하고 있으니.
  보이는 뼈만이 뼈고 보이지 않는 뼈는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고집한다면 그런 자와는 같이 밥도 먹지 말고 술도 마시지 말아야 하는 것 아닌가. 바로 그런 사실을 한 편의 시에 담아 인식 이후에 실천이 있음을, 실천을 해야 보람이 있음을, 넌지시 활자화 하여 애인 자랑하듯 드러낸 것이다. 그러니 '물의 뼈'에 대한 가능성과 불가능성을 따지며 재론한다면 그것은 홍 시인을 욕되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진리와 오류를 뛰어넘어 절대적 진리를 시에 담아 “생명을 세우는 것은 단단한 뼈가 아니라 물이 만드는 부드러운 뼈다.”라고 역설하는 의미를 우리 또한 모르는 바 아니나 다시 한번 세상에 던지는 우문현답 같은 필로소피에 푼푼해지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결국 진리는 절대적인 것이며 또한 상대적이라는 사실까지 독자들에게 물처럼 젖어 알게 했으니. 소소명명昭昭明明이다.

       - 황도제 (시인)


* 단단하지 않고 부드럽다. 부드럽다고 느꼈을 때는 이미 물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다는 말이다.
이후로 몸을 만지는 물에 반응하게 되고, 비로소 젖어 들었다는 말을 쓴다. 지금까지 내가 일어서고
가라앉던 것은 물이 차오르고 소멸하던 몸의 일이다. 이를테면 어떤 약속도 없이 따라가는 영원의 길이다.

   내 몸이 살고 죽는 것은 문서의 표기로 선고하는 게 아니라 물이 인도하는 길의 존재 여부이다.
몸에 들어온 말에 의지하는 것은 생명 있는 것들의 오랜 전통이고 이는 자연의 이치를 벗어나지
않는다. 시를 읽을 때도 그렇다. 그대로 젖어 물의 뼈를 만지는 자세를 취한다. 시가 더디게 오는
날에는 물의 기억으로 고개를 돌린다. 언젠가 내게 닿았던 물의 뼈를 찾아 슬금슬금 더듬어
오르는 버릇이 있다.
   - 금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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