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엽서
洪 海 里
풀잎에 한 자 적어
벌레소리에 실어 보냅니다
난초 꽃대가 한 자나 솟았습니다
벌써 새끼들이 눈을 뜨는
소리, 향기로 들립니다
녀석들의 인사를 눈으로 듣고
밖에 나서면
그믐달이 접시처럼 떠 있습니다
누가
접시에 입을 대고
피리 부는 연습을 하고 있습니다
창백한 달빛을 맞은
지상의 벌레들도
밤을 도와 은실을 잣고 있습니다
별빛도 올올이 내려
풀잎에 눈을 씻고
이슬 속으로 들어갑니다
더 큰 빛을 만나기 위해
잠시,
고요 속에 몸을 뉩니다
오늘도
묵언 수행 중이오니
답신 주지 마십시오.
- 시집 『푸른 느낌표!』(2006, 우리글)
엽서
洪 海 里
시월 내내 피어오르는
난향이 천리를 달려 와
나의 창문을 두드립니다
천수관음처럼 서서
천의 손으로
향그런 말씀을 피우고 있는
새벽 세 시
지구는 고요한 한 덩이 과일
우주에 동그마니 떠 있는데
천의 눈으로 펼치는
묵언 정진이나
장바닥에서 골라! 골라! 를 외치는 것이
뭐 다르리오마는
삐약삐약! 소리를 내며
눈을 살며시 뜨고
말문 트는 것을 보면
멀고 먼 길
홀로 가는 난향의 발길이
서늘하리니,
천리를 달려가 그대 창문에 닿으면
"여전히
묵언 정진 중이오니
답신은 사절합니다!"
그렇게 받아 주십시오
그러나
아직 닿으려면 천년은 족히 걸릴 겁니다.
- 시집『푸른 느낌표!』(우리글, 2006)
*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요. 당신은 멀고, 그리움이 꽃대를 타고 오르는 소리 들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사람은 향기를 보냅니다. 그믐달이 넘어가기 전에, 한 줄 답신을 매달아 놓습니다.
가을에는 그렇습니다. 잠깐 읽은 엽서도 품게 됩니다. 면벽으로 앉은 방에 달빛이 스며들었습니다.
잠깐 돌아앉아, 그림자처럼 흐르다가 사라지는 글자를 훑습니다. 홀로 답신을 쓰고 읽습니다.
다시 고요로 눕기 전에.
- 금 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