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選集『洪海里는 어디 있는가』(2019)

황태의 꿈

洪 海 里 2018. 12. 20. 04:49

* 강경주 님의 페북에서 옮김.

 

황태의 꿈

  

洪 海 里

 

 

아가리를 꿰어 무지막지하게 매달린 채

외로운 꿈을 꾸는 명태다, 나는

눈을 맞고 얼어 밤을 지새우고

낮이면 칼바람에 몸을 말리며

상덕 하덕에 줄줄이 매달려 있는

만선의 꿈

지나온 긴긴 세월의 바닷길

출렁이는 파도로 행복했었나니

부디 쫄태는 되지 말리라

피도 눈물도 씻어버렸다

갈 길은 꿈에서도 보이지 않는

오늘밤도 북풍은 거세게 불어쳐

몸뚱어리는 꽁꽁 얼어야 한다

해가 뜨면

눈을 뒤집어쓰고 밤을 지새운 나의 꿈

갈가리 찢어져 날아가리라

말라가는 몸속에서

난바다 먼 파돗소리 한 켜 한 켜 사라지고

오늘도 찬 하늘 눈물 하나 반짝인다

바람 찰수록 정신 더욱 맑아지고

얼었다 녹았다 부드럽게 익어가리니

향기로운 몸으로 다시 태어나

뜨거운 그대의 바다에서 내 몸을 해산하리라.

 - 시집『비밀』(2010, 우리글)

 

  * 최근 ‘블루오션’이라는 용어가 칼럼이나 기고를 통해서 회자된 적이 있

다.『Blue Ocean Strategy(불루오션전략)』이라는 책에서 처음 주창되었

다. 저자는 기존의 경쟁이 심한 시장을 ‘Red Ocean'이라고 명명하고, 새

로운 경쟁이 없는 새로운 산업에 진출하거나 새로운 제품을 끝없이 개발

하려는 노력이 지금까지 꾸준하게 있어온 것이라는 뜻이다.

  여기서 우리의 삶과 문학도 예외는 아니다. 인생의 블루오션을 찾기 위

해서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도전과 노력에 끝없이

매달린다.

  문학에서의 블루오션은 시인이 가지고 있는 예술적 상상력이 경쟁력이

다. 시인이 오랜 기간 시를 쓰면서 추구하고 있는 시적 상상력을 찾아가는

것이 블루오션전략일 것이다.

  홍해리 시인은 자연의 사물을 통하여 시적 상상력을 찾아내고 새로운

시세계를 추구한다. 시인은 덕장에 걸려 있는 명태를 보며 상상한다. 명

태의 존재를 통해서 시인의 삶을 투사한다. 어부에게 잡혀 올라와 아가리

에 꿰어 덕장에 매달리는 순간 자신과 오버랩이 된다. 명태는 혹한의 추

위와 견디면서 단단해지고 속살은 부드러워진다. 시인의 삶과 시 또한

그렇다. 또 바다로 가서 만선의 꿈을 꾸고 있다.

  시인은 지나온 삶이 파도가 출렁이는 바닷길이었지만 행복했었다고 고

백을 한다. 시류時流에 흔들리지 않고 오직 자신만의 스타일로 꿈꾸며

버리지 않았던 삶이 덕장과 바다에서 묻어난다. 덕장에서의 바람이 찰수

록 정신이 맑아진다고 한다. 그리고 다시 태어난다.

  시인의 문학적 블루오션은 꽃 한 송이에 깃들인 우주적 상상력을 찾아

내는 일이다. 바다의 작은 항구는 자궁이다. 이곳에서 새 생명이 태어난

다. “수천 길/ 암흑의 갱/ 반짝이는 언어의 사금” 시인의 상상력은 연약한

의 뿌리에서 암벽을 파고드는 갱도를 찾아낸다.

  갱도는 암흑의 공간이다. 암흑의 공간이지만 황금이 있다. 인간의 욕구

를 보여주는 현실세계를 이야기하지만 시인에겐 사욕이 없다. 가슴속에

서 아지랑이가 되어 산화하거나 어느 날은 찔레꽃의 꽃방에서 푸른 바다

를 헤쳐 나간다. 난의 뿌리처럼 살고, 푸른 바다를 항해하며 자유로운

영혼 속에 있다.

  홍해리 시인이 생각하는 시란 무엇일까?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자연을 심안으로 보아내며 자연에서 뽑아놓은 명주실 같은 탱탱한 사랑

이다. 자벌레가 나뭇가지 위에서 지나는 것을 보고 산을 보듯이 섬세한

심안心眼의 통찰력이다.

  현대 사회는 100세 시대라 한다. 90세에 전시를 준비하는 어느 서예

가의 집념처럼 오늘도 새로움을 찾아 예술과 문학적 삶의 블루오션을

탐구하는 洪海里 시인이야말로 이 시대의 참 젊은 시인이라 생각한다.

  - 한규동(시인)



* 명태는 대구과의 바닷물고기. 이름을 여러 번 갈아칩니다. 바다에서 갓 잡아 올린 것을 명태. 그것이 방금 죽어 싱싱한 상태로인 것을 생태. 냉동고에 넣고 급속히 얼린 것을 동태. 나무토막처럼 바싹 말린 것은 북어. 그리고 겨울 칼바람 속에서 눈발을 맞으며 얼다 녹기를 여러 날, 비릿한 해풍을 몸에 듬뿍 품고서야 비로소 명태는 황태로 거듭 살아납니다. 시인은 이 모든 오욕을 견디기로 작정한 것 같습니다. 아마도 자신의 치부를 몽땅 드러내 보일 줄 아는 사람들이 정작 시인인가 봅니다. 그리하여 당신과 나, 우리는 모두 무엇을 위해 오늘의 삶을 살아낼 것인가, 의심하고 질문하고 기다리는 사람들이 아마도 시인의 몫인 듯합니다. 그들은 만선의 꿈도 저버립니다. 스스로 아가리에 죽창처럼 대나무를 꿰어 바닷바람에 몸을 내어 말리는 존재. 눈이 오고 바람이 불고 비가 오고 해가 뜨고 이 모든 것을 두 눈 부릅뜬 채 지켜보면서 죽음을 목도하는 사람들. 죽어서 “그대의 바다에서 내 몸을 해산하리라” 꿈을 꾸는 이상한 나라의 이상한 어족들. 죽어서도 기어이 또 다른 삶을 살아내는 외롭고 춥고 높고 쓸쓸해서 눈물처럼 반짝, 기어이 사라져 버리는 시인들.
  - 손현숙(시인)


 

                   강원도 평창군 대관령면 횡계리 <황태덕장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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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엉망이다.

따라서 나도 엉망이다.

방향이 없다. 사공만 많아서 소리, 소리, 개소리를 지르고 있다.

개만도 못한 것들이 개나 된 것처럼 울부짖고 있다.

광적으로 선동하고 단순하고 순진하게 넘어가는 참으로

열광적인 국민이다.

너무 똑똑한 것일까, 아니면 지나치게 무지하고 무식한 것일까?

과똑똑이라는 말이 있고, 過猶不及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그래도 지구는 돌 것이고 내일도 해는 떠오를 것이다.

성숙한 민주주의를 향한 진통의 과정이라고 생각하면

참으로 편하다.

언제 배부르고 등 따수운 봄은 올 것인가?

 

"갈 길은 꿈에서도 보이지 않는

오늘밤도 북풍은 거세게 불어쳐

몸뚱어리는 꽁꽁 얼어야 한다"

 

그래야 제정신이 날 듯하다.

아니, 그래도 정신을 못 차릴 것 같다.

 

"오늘도 찬 하늘 눈물 하나 반짝인다

바람 찰수록 정신 더욱 맑아지고

얼었다 녹았다 부드럽게 익어가리니"

 

오늘도 나는 꽁꽁 얼고 싶다. 

얼어서 사지가 모두 터지고 싶다.

 

- 洪海里(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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