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選集『洪海里는 어디 있는가』(2019)

상사화相思花

洪 海 里 2018. 12. 28. 07:03


상사화相思花 


洪 海 里

 

내가

마음을 비워

네게로 가듯

너도

몸 버리고

마음만으로 

내게로 오라

너는

내 자리를 비우고

나는

네 자리를 채우자

오명가명

만나지 못하는 것은

우리가 가는 길이 하나이기 때문

마음의 끝이 지고

산그늘 강물에 잠기우듯

그리움은

넘쳐 넘쳐 길을 끊나니

저문저문 저무는 강가에서

보라

저 물이 울며 가는 곳

멀고 먼 지름길 따라

곤비한 영혼 하나

낯설게 떠도는 것을!


- 시집『푸른 느낌표!』(2006, 우리글)



                                                                                         

 

위도상사화, 희생-배려로 하나되는‘사랑’

 

노 점 홍(부안군 부군수)


2015년 08월 27일 (목)

PSUN@sjbnews.com



‘내가/ 마음을 비워/ 네게로 가듯/ 너도/ 몸 버리고/ 마음만으로/ 내게로 오라/ 너는/ 내 자리를 비우고/ 나는/ 네 자리를 채우자/ 오명가명/ 만나지 못하는 것은/ 우리가 가는 길이 하나이기 때문/ 마음의 끝이 지고/ 산그늘 강물에 잠기우듯/ 그리움은/ 넘쳐넘쳐 길을 끊나니/ 저문저문 저무는 강가에서/ 보라/ 저 물이 울며 가는 곳/ 멀고 먼 지름길 따라/ 곤비한 영혼 하나/ 낯설게 떠도는 것을.’

한국 현대시단의 중진인 洪海里 시인의 시 「상사화相思花의 전문이다.

  꽃이 필 때는 잎이 없고 잎이 달려 있을 때는 꽃이 없어 서로 만나지 못하면서 간절하게 그리워한다고 해 이름 붙여진 그 꽃 ‘상사화’를 소재로 삼은 대표적인 작품이다.

  또 죽은 아버지의 극락왕생을 바라는 효성 깊은 소녀의 백일간의 탑돌이와 이 소녀를 사랑했지만 마음을 드러내지 못하고 죽은 젊은 스님의 아름답고도 슬픈 전설이 담긴 꽃도 바로 ‘상사화’다.

  그래서 상사화의 꽃말은 ‘이뤄질 수 없는 사랑’이다. 꽃 색깔도 슬프고도 아름다운 사랑의 아픔을 간직한 깊은 붉은색과 노란색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부안 위도에서만 자생하는 위도상사화는 깨끗하고도 고결한 순백의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다. 마치 ‘이뤄질 수 없는 사랑’이 아니라 ‘영원불멸의 순결한 사랑’을 의미하듯 너무나도 희다. 위도상사화는 이른 봄 3월엔 잎이 나고 그렇게 자란 잎이 6월에 다 지고 8월 어느 날 갑자기 하룻밤 사이 꽃대가 오르면서 사방으로 꽃이 펼쳐지듯 핀다. 이른봄 다른 식물들이 채 눈도 뜨기 전에 위도상사화는 풍성한 잎을 틔우는 것이다.

  이처럼 위도상사화에는 끈질긴 생명력이 있다. 한겨울 세상 모든 것을 뒤덮는 폭설에도, 살을 에듯 불어오는 서해바다의 칼바람에도 위도상사화는 어김없이 3월이면 잎을 틔우고 8월이면 순백의 꽃을 피운다. 위도상사화는 ‘이뤄질 수 없는 사랑’의 아픔이 아니라 서로 희생하고 배려하면서 하나되는 ‘영원한 사랑’인 것이다. 또 위도상사화의 희생과 배려는 한평생 자식을 위해 희생하고 가족을 위해 배려하는 우리네 어머니와도 닮아 있다.

  “엄마는 너희들 먹는 것만 봐도 배부르다”는 어머니들의 희생이 자식들을 살찌우고, “하루 종일 밭에서 허리 한 번 펴지도 못하고 호미질 해도 가족만 보면 힘이 난다”는 어머니들의 배려가 가족의 행복한 웃음꽃을 피우듯 위도상사화와 어머니는 희생과 배려의 아이콘이다.

  위도상사화가 절정인 8월 말에는 ‘고슴도치섬’ 위도가 새하얀 순백의 향연으로 물든다. 휘엉청 달 밝은 밤이면 꽃빛과 달빛이 어우러져 그 정취가 환상을 넘어 꿈에서도 볼 수 없는 황홀경을 선사한다.

  올해는 ‘위도상사화 필 무렵 섬마을 달빛보고 밤새걷기’ 축제가 8월 29일 위도에서 열린다.

  아무런 준비 없이 위도를 찾아 희디흰 위도상사화의 아름다움에 취해, 어머니의 품 같은 포근함에 취해 어린 아이가 걸음마를 배우듯 마냥 걷는 축제다.

  위도상사화의 신비함을 더할 한여름 밤의 청명한 달빛과 서해바다의 파도소리가 들려주는 잔잔한 노래는 덤이다. 그 정취에 취해 밤새 섬을 한 바퀴 걸어도 피곤함은커녕 몸과 마음이 힐링되는 신선함을 맛볼 것이다. 상사화의 꽃말이 ‘이뤄질 수 없는 사랑’이어도 좋다. 이뤄질 수 없는 사랑에 연연하지 말고 지금 내 곁에 있는 소중한 가족과 연인, 지인과 함께 위도상사화 만발한 8월 말 위도에서 영원불멸의 순결한 사랑을 느껴보자. 그 기적 같은 일을 은은한 달빛 아래서 환상적인 순백의 위도상사화가 멋지게 선사할 것이다. 

                                                                        - 새전북신문 / 2015. 8. 27. 노점홍


                       * 감사의 글 / 박찬숙

 
어느 아주 초라한 시골의 뒤엄진 담벼락에
고고히 펴있는 상사화 한무더기를 보았습니다.
간 밤 내린 비에 온 몸이 젖어도 떨지않는 수줍음과 당당한 그리움으로 빗물을 이슬처럼 머금고

거기 그 자리에 함초롬히 펴 있었습니다.
수 천년
수 만년
아니,
억겁의 세월이 흘러도 결코 꽃과 잎이 만날 수 없는 꽃~
그 애잔한 그리움 하나 가슴에 품고
햇살 진한 여름날 밤에 꽃보다도 더 꽃을 아는 아름다운 시 한 편이 제 귀를 울렸습니다.

"오명가명
만나지 못하는 것은
우리가 가는 길이 하나이기 때문"

터엉~
텅~~
해머로 뒷통수를 강하게 후려치는 한마디!
'우리가 가는 길이 하나이기 때문'이라는 시인의 위로의 한마디..
왈칵~~
울음이 쏟아지고
지리한 장맛비를 핑계삼아 펑펑 울 수가 있었습니다.
수 십년의 세월을 그리워하면서도 서로 맞닿지 못할 평행선같은 그리움이 일순간에 사라지고
같은 맘,
같은 생각,
같은 뜻으로
내가 네가 되고
네가 내가 되어
'곤비한 영혼'이라 할지라도
'멀고 먼 지름 길 하나'
앞서거니 뒷서거니 나아가고 있다는 사실에 버리지 못한 미련한 그리움이 사라지고 승화되어진 아픈 사랑 하나 꽃 피워졌습니다.

장맛비가 지리하여 고통이어도
염천 하늘의 햇살이 서러워 기승을 부려도
함초롬히 이슬먹은 승화된 사랑 하나 꽃 피워진
이 여름은 쪽빛 머금은 모시 한자락 걸쳐입은 나그네의 비워진 마음입니다.

귀한 시에 감사드립니다.

2013. 07. 05. 20. 00
운장산 산그늘 진 그 자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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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무릇[石蒜]

  ‘내가/ 마음을 비워/ 네게로 가듯/ 너도/ 몸 버리고/ 마음만으로/ 내게로 오라/ 너는/ 내 자리를 비우고/ 나는/ 네 자리를 채우자/ 오명가명/ 만나지 못하는 것은/ 우리가 가는 길이 하나이기 때문/ 마음의 끝이 지고/ 산 그늘 강물에 잠기우듯/ 그리움은/ 넘쳐넘쳐 길을 끊나니/ 저문저문 저무는 강가에서/ 보라/ 저 물이 울며 가는 곳/ 멀고 먼 지름길 따라/ 곤비한 영혼 하나/ 낯설게 떠도는 것을.’

  한국 시단의 중진으로 올해 66세인 홍해리의 시 ‘상사화(相思花)’ 전문이다. 꽃이 필 때는 잎이 없고, 잎이 달려 있을 때는 꽃이 없어 서로 만나지 못하면서 간절하게 그리워한다고 해서 그 이름으로 불린다는 상사화를 소재로 삼은 대표적인 시 중의 하나다. 잎이 완전히 진 뒤에 꽃이 피는 상사화는 화엽불상견(花葉不相見)의 생태와 애틋한 사연의 전설을 지녔을 뿐 아니라 자태가 매혹적이기 때문에 완상(玩賞)의 대상으로 삼는 사람이 많다.
  사찰 마당이나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꽃으로 석산(石蒜)으로도 불리는 꽃무릇 역시 그렇다. 상사화와 마찬가지로 수선화과에 속하면서 생태 또한 비슷한 꽃무릇은 잎이 없는 상태의 비늘줄기가 30~50㎝ 길이로 곧게 솟아올라 그 끝에 강렬한 인상의 붉은 꽃을 화사하게 피운다. 하지만 상사화와 달리 꽃무릇은 꽃이 먼저 피었다가 지고 난 뒤에 잎이 나기 시작한다. 꽃의 색깔·형태·개화 시기 등도 조금씩 차이 나지만 같은 꽃을 다른 이름으로 부르기도 하는 것으로 잘못 아는 사람이 드물지 않은 것은 두 꽃의 생태적·정서적·상징적 공통분모 때문이리라.
  요즘이 꽃무릇이 만개하는 시기다. 국내 최대 군락지로 알려진 전남 영광 불갑사와 함평 용천사, 전북 고창 선운사 경내와 주변 산기슭·계곡 등에는 꽃무릇을 보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찾아온 사람들의 발길이 줄을 잇고 있다고 한다.
  꽃무릇이나 상사화의 꽃과 잎처럼 서로 간절하게 그리워하면서도 오랜 세월 전혀 만나지 못해온 남북 이산가족의 상봉 행사가 26일부터 10월1일까지 금강산에서 열린다. 2007년 10월 중단 이래 2년 만인 것은 북한이 이산가족 상봉조차 정략화해왔기 때문임은 물론이다. 북한이 천륜(天倫)이나마 되새겨 상봉을 조속히 상시화함으로써 홍 시인의 표현 그대로 ‘곤비한 영혼’에 해당할 고령의 이산가족들이 맺힌 한을 조금이라도 풀 수 있는 기회를 지속적으로 마련하게 되기를 기대한다.

     - 김종호 / 논설위원(문화일보 2009. 9.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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