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소화
洪 海 里
언제 바르게 살아 본 적 있었던가
평생 사내에게 빌붙어 살면서도
빌어먹을 년!
그래도 그거 하나는 세어서
밤낮없이
그 짓거리로 세월을 낚다 진이 다 빠져
축 늘어져서도
단내를 풍기며 흔들리고 있네.
마음 빼앗기고 몸도 준 사내에게
너 아니면
못 산다고 목을 옥죄고
바람에 감창甘唱소리 헐떡헐떡 흘리는
초록치마 능소화 저년
갑작스런 발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라, 花들짝,
붉은 혀 빼물고 늘어져 있네.
― 『황금감옥』(2008, 우리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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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는 마약이다!
시는 ‘중독성’ 마약이다. 한 번 중독되면 벗어나기 힘들다. 아니 마약 이상이다.
담배 끊는 사람은 간혹 보이지만 시 끊는 사람은 보기 힘들다.
“마음 빼앗기고 몸도” 주었다는 것을 그렇게 보는 것이다.
“너 아니면/
못 산다고 목을 옥죄고/
바람에 감창甘唱소리 헐떡헐떡 흘리는/
초록치마 능소화 저년”을 시인의 자화상으로 보는 것이다.
“사내”는 그렇다면 詩 자체가 된다. 詩에게 “붉은 혀 빼물고 늘어져 있”는 시인의 처참하게 행복한 모습!
“갑작스런 발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라, 花들짝/ 붉은 혀 빼물고 늘어져 있네”를 시마가 쳐들어왔을 때의
모습으로도 볼 수 있다. 시마는 갑자기 쳐들어오기 때문이다. ‘花들짝/ 붉은 혀 빼물고 늘어져 있네’를
시마의 결과물로 보는 것이다. 많은 사람이 마약 중독으로 죽는다. 담배 중독으로 죽는다. 죽음으로써
중독에서 해방된다. 시인도 죽음으로써 시로부터 해방된다. 다음 구절을 그렇게 볼 수 있을까.
- 박찬일(문학평론가)
얼마 전 비바람에 떨어진 능소화를 가지런히 손 위에 올려봅니다.
옛날 장원급제한 사람이나 암행어사의 모자에 꽂은 꽃이라 해서 어사화라 불리기도 했답니다.
그래서일까요. 그녀의 꽃말은 ‘명예’라고 합니다.
- 강미례 동아닷컴 기자 november@donga.com (동아일보 2019. 8. 3.)
* 시낭송가 15인이 추천한 애송시
- 계간문예 2022 봄호(제67호).
시낭송은 시 대중화를 견인하는 시의 성장판이자 동력이다.
전국 도처에서 크고 작은 시낭송대회가 열리고, 이런 행사를 통해 수많은 전문 시낭송가가 배출되고 있다.
시낭송가 15인이 추천하는 이 계절의 베ㅐ스트 애송시 5편을 선보이는 기획특집이다.
* 나태주: 대숲 아래서
* 박규리: 치자꽃 설화
* 이지엽: 어느 종착역에 대한 생각
* 정희성: 몽유백령도
* 홍해리: 능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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