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봄, 벼락치다』2006

요요

洪 海 里 2019. 1. 1. 17:00

요요

洪 海 里

 


우체국 가는 길
초등학교 앞
어른 키만한 나무
구름일 듯 피어나는 복사꽃
헤실헤실 웃는 꽃잎들
가지 끝 연둣빛 참새혓바닥
일학년 일과 파할 무렵
이따끔 터지는 뻥튀기
혼자서 놀고 있는 눈부신 햇살

요요하다.

 

- 시집『봄, 벼락치다』(2006, 우리글)


* 시인은 눈부신 햇살이 쏟아지는 초등학교 앞, 복사꽃이 핀 풍경을 아주 멀리서 조감하듯 바라보고 있다. 나른한 햇살과 나무와 꽃잎과 참새, 그 햇살 사이를 돌아다니는 소리들이 만드는 풍경을 “요요하다”라고 말했다. “요요하다”라는 한 문장이 한 연으로 구분되어 앞의 연을 설명할 뿐만 아니라 그것을 현상으로 보여준다. 이 말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중첩되어 있다. 말하자면, “요요하다”에는 그 풍경의 고요함[寥寥]과 그 풍경이 만드는 상쾌한 느낌[夭夭], 그리고 그 풍경을 보고 느끼는 화자의 들뜬 내면의 움직임[搖搖]이 동시에 숨겨져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 아름답고 맵시 있는 풍경은 마치 화자의 유년을 그대로 재현하고 있다. 이 풍경을 보고 마음은 흔들리고 들뜰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 ‘요요’란 ‘다시 돌아온다’는 뜻의 필리핀 말이기도 하다. 시인이 의도했건 그렇지 않았건 간에 이 시에는 “요요하다”라는 말이 만드는 여러 풍경이 동시적으로 펼쳐진다. 뿐만 아니라 그 풍경은 과거와 현재를 순식간에 왕복하고, 언어는 그 내면과 현실을 왕복한다.

현상학적 관찰에 집중하는 시인의 언어는 사물의 발견과 이해에 주력함으로써 자기의 삶을 꾸준히 확대하고 풍부하게 한다.

- 여태천(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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