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選集『洪海里는 어디 있는가』(2019)

비밀

洪 海 里 2019. 1. 2. 06:57

비밀 

 

洪 海 里

 

 

그 여자 귀에 들어가면

세상이 다 아는 건 시간문제다

조심하라 네 입을 조심하라

그녀의 입은 가볍고 싸다

무겁고 비싼 네 입도 별수없지만

혼자 알고 있기엔 아깝다고

입이 근지럽다고

허투루 발설 마라

말끝에 말이 난다

네 말 한 마리가 만의 말을 끌고 날아간다

말이란 다산성이라 새끼를 많이 낳는다

그 여자 귀엔 천 마리 파발마가 달리고 있다

말은 발이 없어 빨리 달린다, 아니, 난다

그러니 남의 말은 함부로덤부로 타지 마라

말발굽에 밟히면 그냥 가는 수가 있다

그 여자 귓속에는 세상의 귀가 다 들어 있다 

그 여자 귀는 천 개의 나발이다

그녀는 늘 나발을 불며 날아다닌다

한번, 그녀의 귀에 들어가 보라

새끼 낳은 늙은 암퇘지 걸근거리듯

그녀는 비밀肥蜜을 먹고 비밀秘密을 까는 촉새다

'이건 너와 나만 아는 비밀이다'.

 

- 시집『비밀』(2010, 우리글)

 

 

* 최병무 시인의 블로그에서 옮김.

 

◆시 읽기

  홍해리 시인은 열여섯 번째 시집 표제를 '비밀'로 내걸었다.

  그녀라는 인물을 설정하고 “그 여자 귀에 들어가면 세상이 다 아는 건 시간문제다. 조심하라 네 입을 조심하라며 동음이의어를 활용해서 그녀를 비밀(肥蜜)을 먹고 비밀(秘密)을 까는 촉새라고 했다.

  ‘비밀[祕密]’이란 남에게 드러내거나 알리지 말아야 할 일, 밝혀지지 않았거나 알려지지 않은 내용을 말한다. 그리고 언어나 문자 따위의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전할 수 없는 것에 대해 참된 의미를 숨기고 상징적으로 가르침을 설하는 뜻이기도 하다.

사람의 생각이나 느낌 따위를 표현하고 전달하는 말, 사람을 죽이고 살리기도 하는 말, 비밀을 지켜달라는 말에 덧말까지 보태지며 건너갈수록 눈덩이처럼 불어나기도 하는 것이 말이다.

  예로부터 말에 대한 교훈은 수없이 많다. 그만큼 중요하다는 증거일 것이다.‘말 한마디에 천 냥 빚을 갚는다’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 ‘말끝에서 말이 난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 ‘웃느라 한 말에 초상난다’ 등등...... 속담을 시화시켜서 우리가 익히 알고 있으면서도 잘 지켜지지 않는 말의 중요성을 한 번 더 상기시켜 주고 있는 것이다.

  - 유 진/ 시인, 첼리스트<선린대학 출강>

 

 

<감상>

  생각해보니 내가 그 여자. 입 쉽게 여는 그 여자가 맞다. 사실 이것도 비밀인데, 내가 뱉은 말이 말처럼 뛸 줄 몰랐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원래 내 생각은 깊고 푸른 심연에 잠겨 놀던 것이다. 거기 몸을 맡기면 기대하지 않은 풍요로 눕고 여유로운 헤엄으로 저녁에 닿는다. 우연히 뭍으로 고개를 내밀고 귀를 여러 개 가지게 되기 전까지는 그랬다는 말이다.

  수많은 말을 담아 살진 말은 밖으로 나가고 싶어 안달이다. 적으면 기껏해야 한 뼘도 안 되는 분량의 말이 자꾸 새끼를 치는 것이었다.

  오늘 또 한 번의 발설에 뒤가 가려운데, 그래도 지금 받은 말은 다듬고 다듬어진 시 한 편이라, 그걸 그대로 흉내 낸 것뿐이라는 핑계로 적당하다.

    _ 금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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