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選集『洪海里는 어디 있는가』(2019)

바람도 구멍이 있어야 운다 - 옥계 바닷가에서

洪 海 里 2019. 1. 7. 18:04

바람도 구멍이 있어야 운다

_ 옥계 바닷가에서

 

洪 海 里

 

 

바다가 파도로 북을 치고 있었다

하늘과 땅이 두 쪽의 입술이었다

밤이 되자 별들이 하나, 둘씩 반짝이고 있었다

떠들썩하던 천년 소나무들이 바다를 읽고 있었다

달빛 밝은 우주의 그늘에서

두 쪽의 입술이 잠시 지상을 밝혀 주었다.

 

바람도 구멍이 있어야 운다

혼자서 우는 것은 곡뿐이다

에는 개 머리 위에 두 개의 입이 있다

이쪽은 저쪽이 있어서 운다

쪽쪽 소리를 내는 것은 존재를 확인하는 일

쪽은 색을 낼 때만 쓰는 것이 아니다.

― 시집『바람도 구멍이 있어야 운다』

 

  * 아마 옥계 바닷가의 밤 풍경인 듯하다. 세상은 잠들어 고요하나 하늘에는 별과 달이 다투어 빛나고, 밤바다는 파도로 일렁이며 밀려왔다 몰려가며 철썩대고 있었으리라. 사실 밤바다는 고요하고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밤이 되면 파도소리는 더욱 요란하고 방풍림들이 바람에 더욱 떠들썩하다. 파도가 치고, 소나무가 바람에 떠들썩하는 것은 하늘과 땅이라는 두 입술이 교감하며 내는 소리다. 바람과 구멍이 만나는 구체적인 소리인 것이다. 이를 하늘과 땅의 조화, 인연, 교감, 떨림 등등으로 싸잡아 표현한다.

애초 이 표현의 원류를 더듬어 오르다 보면 장자와 만나게 된다.

 

자기子綦가 답했다.

우주가 기를 내뿜는 호흡을 바람이라고 한다.

때로는 가만히 있다가

한번 터지면 땅 위의 모든 틈새에서 소리친다.

너만이 저 요요한 소리를 듣지 못하느냐?

산림의 꼭대기와

백 아름의 큰 나무 구멍은

코 같고, 입 같고, 귀 같고

두공 같고, 술잔 같고, 절구 같고,

연못 같고, 웅덩이 같기도 하다.

물 부딪는 소리, 시위 소리, 꾸짖는 소리, 물 마시는 소리,

울부짖는 소리, 흐느끼는 소리, 동굴의 소리, 새 울음소리

앞에서 울면 뒤에 화답하여 운다.

산들바람은 가볍게 화답하고, 회오리바람은 크게 화답하다가,

사나운 바람이 자면 모든 구멍들은 고요하게 된다.

그런데 너 혼자만

만물이 저마다 운행하는 소리를 듣지 못한단 말인가?”

―『장자』 「제물론齊物論부분

 

   이 대목은 남곽의 자기와 그의 제자인 안성자유子游의 대화다. 어느 날 제자가 보니 스승께서 몸은 꼭 마른 고목 같고, 마음은 꼭 죽은 재처럼 하고 책상에 기대어 멍하니 앉아 있어서, 선생님의 모습이 어제와 같지 않다고 걱정이 되어서 물었다. 스승이 대답하기를 자기는 지금 몸을 잃고 네가 듣지 못하는 음악을 듣고 있노라고 말한다. 이로 보건대 음악에는 사람의 음악, 땅의 음악, 하늘의 음악이 있어 보통 사람들은 사람의 음악 정도는 들을 수 있는 귀가 있지만 지인至人만이 땅의 음악과 하늘의 음악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모든 음악이란 바람이 구멍을 만날 때 나는 소리이며 구멍의 여하에 따라 각자 자기 소리를 낸다는 것이다.

옥계 바닷가에서에서 나는 소리들은 바람(하늘, 우주가 기를 내뿜는 호흡)이 구멍(, 유형무형의 사물이나 인연처)을 만나 내는 것들이다. 그 소리들은 천지 음양이 한 몸 되어 뒤섞이는 소리이며, 우주 운행의 이치이며, 모든 존재 생성의 소리다. 시인은 아무도 없는 바닷가에서 철썩이는 파도소리와 떠들썩한 소나무, 하늘의 별과 달을 보고 심상치 않는 우주의 이치를 예감하는 순간을 맞이한다.

시집 바람도 구멍이 있어야 운다바람이라는 우주 생성의 기가 구멍이라는 존재 생성의 터전 위에서 삶의 구체적인 흔적인 소리를 내고 있다. 바람이 없으면 아무리 구멍이 많아도 소리가 나지 않는다. 바람이 아무리 불어도 구멍이 없으면 소리가 나지 않는다. 바람과 구멍이 만날 때 소리가 나는 것이다. 바람은 언제 어디나 있는 법이며 구멍의 여하에 따라 각자의 자기 소리가 난다. 이런 구멍에서는 이런 소리, 저런 구멍에서는 저런 소리, 각별한 구멍에서는 각별한 소리, 처연한 구멍에서는 처연한 소리가 난다. 이것이 드라마 같은 인간의 삶이며, 지고한 정신이며, 예술이며, 바로 시인 것이다. 실로 시인은 옥계 바닷가에서장자의 저 머뭇대는 군소리를 12행의 짧은 시로써 설파해 버렸다

   - 임채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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