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選集『洪海里는 어디 있는가』(2019)

매화, 눈뜨다

洪 海 里 2019. 1. 8. 17:19

 

 

 매화, 눈뜨다

 

洪 海 里

 


국립4·19민주묘지

더디 오는 4월을 기다리는 수십 그루 매화나무

한겨울 추위를 이겨내고 꿋꿋하게 서 있다

지난여름 삼복 염천의 기운으로 맺은 꽃망울

4월이 오는 길목에서

그날의 함성처럼 이제 막 터지려 하고 있다

두근거리는 가슴이 심상찮다

그날 젊은이들도 이랬으리라

지금은 관음觀音 문향聞香이 문제가 아니다

사람들은 방향을 잃은 벌들처럼

무심하게 걸음을 재촉하며 헤매고 있다

한 시인 있어

막 터뜨리는 꽃망울을 보며

절창이야, 절창이야, 꽃을 읊고 있다

연못가 버드나무도 연둣빛 물이 올라

맑은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다

때 되면 철새처럼 몰려와 고갤 조아리고

금방 잊어버리고 마는 새대가리들

그날의 핏빛 뜨거운 함성은 들리지 않고

총선이 다가온 거리마다

떠덜새인 직박구리처럼 떼 지어 수다를 떨고 있다

나라를 구하라[求國]는 듯

먼 산에서 산비둘기 구국구국 구슬피 울고 있다.

 

- 시집『독종』(2012, 북인)

 

   *  4월이 되면 국립묘지 어느 한 곳에선 청매가 핀다. 오롯이 몰려 있는 청매의 군락은 총과 칼 앞에서도 절개를 지켰던 구국의 여인처럼 청아하다. 수유리에 오래 살면서도 그곳에 청매가 피었다는 소식 같은 거 모르고 살았다. 아니 청매가 왜, 청매인지. 왜, 청매가 아름다운지 따위에 대해서는 눈길도 돌리지 못하고 살았다. 어찌 보면 천박하고, 아니 삶이 단순했던 걸까. 어쨌거나 우연히 시인의 발길을 따라 청매 보러 국립4·19민주묘지에 간 적 있다. 조금 후미진 곳에 다소곳한 청매의 자태는 이상하게 사람을 부끄럽게 만들었다. 뭔가, 잘못 살았던 것 같은 반성. 그런 꽃그늘 속에서 시인과 나는 오래, 그저 꽃을 보면서 문자향을 느꼈던 것 같다. 그것도 벌써 오래 전의 이야기다. 그렇게 꽃받침이 푸르러서 청매가 되었다는 수유리 묘지에 핀 청매화의 꽃소식은 절창을 넘어선 득도의 경지였다. “한겨울 추위를 이겨내고 꿋꿋하게 서 있”는 조용한 함성 같은 꽃망울. 아주 오래 전 시인이 겪었던 4·19의 기억들은 여기 이렇게 꽃으로 돌아온다. 지금 사람들은 “방향을 잃은 별들처럼/ 무심하게 걸음을 재촉하며 헤매고 있”겠지만, 그날이 없었다면 오늘도 없을 터. 시인은 구국救國의 뜻에 대해 온몸으로 생각한다. 매화나무 아래 서성이면서, 그때의 오늘과 지금의 오늘에 대해 “그날의 핏빛 뜨거운 함성” 에 대해 “매화, 눈뜨”는 사건처럼 가만히 되새김한다.

   - 손현숙(시인).



* 매화 : http://blog.daum.net/jib17에서 옮김.




서울 9일 아침 영하 10도…, 남녘엔 때 이른 매화!

봄 같은 겨울 날씨에 매화가 활짝 피었다.

낮 최고기온이 8도까지 올라간 8일 부산 남구 동명대 캠퍼스의 모습이다.

매화를 본 행인들에게도 웃음꽃이 피었다.

하지만 차가운 공기가 한반도로 유입되면서 9일 서울 대전 영하 10도, 대구 영하 7도 등 한파가

다시 기승을 부릴 것이라고 기상청은 예보했다.  
  - 부산=박경모 기자 momo@donga.com (동아일보 2019. 01. 09.)

'詩選集『洪海里는 어디 있는가』(2019)'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난꽃이 피면  (0) 2019.01.08
명자꽃  (1) 2019.01.08
개화開花  (0) 2019.01.07
바람도 구멍이 있어야 운다 - 옥계 바닷가에서  (0) 2019.01.07
부채  (0) 2019.01.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