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選集『洪海里는 어디 있는가』(2019)

개화開花

洪 海 里 2019. 1. 7. 19:00

개화開花


洪 海 里



바람 한 점 없는데
매화나무 풍경이 운다

아득한 경계를 넘어
가도가도 사막길 같은 날
물고기가 눈을 뜬다
한 땀 한 땀 수를 놓듯
꽃 피는 소리에 놀라
허공에서 몸뚱이를 가만가만 흔들고 있다
꽃그늘에 앉아
술잔마다 꽃배를 띄우던
소인묵객騷人墨客
마음 빼앗겨
잠시 주춤하는 사이
뼈만 남은 가지마다
폭발하는,

오오, 저 푸른 화약花藥 내! 

         
               -『황금감옥』(2008, 우리글)

 
   * 시인은 때론 시공간을 넘어서는 초월적 예지가 넘쳐야 하나 보다. 무심히
발에 밟히는 시린 이슬 한 방울, 햇살 한 줌까지 고루 나눠주는 우주의 섭리와
소통의 역사를 눈치채야 제대로 시인인가 보다.
  "가도 가도 사막길 같은 날"뿐인 우리 삶 속에서 사실 누가 겨울나무 빈
가지를 제대로 눈여겨 봤겠는가.
  사람보다 직감이 월등히 높은 물고기나, 허공을 차고 날아가는 새들이나
이를 알아챘다는 것인데, 이 시인도 새처럼 물고기처럼 동물처럼, 빈 가지 속
에서 꿈틀대는 꽃 몸통의 움직임을 알아챘다는 것이다.
왜 꽃몸살 앓는 시인인지 알겠다.
  7,80년대 한창 난을 찾아 전국을 떠돌며 난을 찾고 난에 대한
시집까지 출판했떤 난의 시인! 그냥 붙여진 별명이 아니다.
 
  "뼈맘 남은 가지마다/ 폭발하는, // 저 푸른 화약火藥 내!"
 
  푸른 화약내라니!
길 가는 사람들 붙잡고 물어보자. 느꼈어? 뼈만 남은 저 마른 가지에서 폭발
하는 냄새를! 그럼 그렇지. 내 앞가림하기 바쁜 일상의 우리가 어찌 알았겠는가?
그러고 보면, 첫 연에서부터 "바람 한 점 없는데/ 매화나무 풍경이 운다"고
했으니 시인의 끼[氣]가 남다르다.
   - 김금용(시인)


* 시를 받는 것은 꽃 피는 소리에 방의 침묵을 깨우는 일이요, 그의 몸에 닿은 소리를 향기로
들이는 일이다. 시의 말을 기다리는 동안, 묵으로 갈아내릴 말을 차곡차곡 쌓으며 꿇어앉는
동안 당신 문 밖에서 우는 마음이 기다리고 있다.

   경계를 허물고, 눈에 보이지 않는 향기를 품는 자는 언어의 뼈에 꽃을 피운다. 말없이
아프고, 눈을 찢어 향기를 내는 개화의 시절을 산다. 마음 하나 얻는 일은 이렇게 몸을
열어 터지는 경지다.
   아, 바람 따라 문을 열지 않아도 스며드는 저, 향기!
   - 금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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