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選集『洪海里는 어디 있는가』(2019)

난꽃이 피면

洪 海 里 2019. 1. 8. 17:39



난꽃이 피면

 

洪 海 里
 

 

 


아무도 가지 않은 눈 위를
가고 있는 사람
모든 길이 눈 속으로 사라지고
길이 없는 이승을
홀로서 가는
쓸쓸한,
쓸쓸한 등이 보인다.


진초록 보석으로 날개를 달고
눈을 감고 눈을 뜬다
만 가지 시름이 적막 속으로 사라지고
가장 지순한 발바닥이 젖어 있다
내장산 비자림 딸깍다릴 지날 때에도
영원은 고요로이 잠들어 있었거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듯
투명한 이른 봄날 이른 아침에
실 한 오라기 걸치지 않은 여인女人의 중심中心
실한 무게의 남근男根이 하늘에 걸려 있다.

 

 

 

 



   * 선생의 집은 각종 난분으로 가득했었다는데 아쉽게도 구경을 해보지 못해서 그 장관을 표현할 방법이 없지만 선생이 단지 호사가의 취미로 난을 모았던 것은 아니다. 선생에게 난은 단지 군자의 애완물이 아니라 우주의 근원을 상징하는 존재이다. 난의 개화 앞에서 시인은 ‘눈을 감고 눈을 뜬다.’ 육체의 눈을 감고 영혼의 눈을 뜨면 세속의 근심이 눈 녹듯 사라지고 존재의 근원이 비의의 모습을 보인다. 그때의 공간이 내장산이건 저자거리건 상관없이 ‘영원은 고요로이 잠들’고 삼라만상이 투명해지는 순간이 온다. 그 순간 시인은 꽃 한 송이 속에 천지의 조화를 엿보는데 ‘여인의 중심’과 ‘남근’의 어우러짐이 그것이다. 음양의 어우러짐은 결국 생명의 가장 원초적인 형태가 아니던가.

  - 신현락(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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