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選集『洪海里는 어디 있는가』(2019)

우이동솔밭공원

洪 海 里 2019. 1. 8. 19:21

우이동솔밭공원

 

洪 海 里

 

 

백년 묵은 천 그루 소나무가 방하착하고

기인 하안거에 들어 꼼짝도 하지 않는다

나무속 결 따라 신들의 궁전으로 가는 길

울려나오는 금강경의 물결도 숨죽이고 흐른다

수천수만 개의 푸른 붓으로 비경秘經을 새기고 있는

노스님의 먹물은 말라붙어 버렸다

땅속 천 길 이엄이엄 흐르는 천의 냇물이여

내 마음의 다랑논에 물꼬를 열어 다오

바람의 땅 낮은 곳을 따라 흐르는 온전한 물소리

잠깬 물고기 한 마리 날아올라

천년 세월을 면벽하고 나서 쇠종에 매달리니

바람이 와! 화엄華嚴의 춤을 춘다

무거운 침묵으로 빚은 야생의 시편들

눈 밝은 이 있어 저 바람의 노래를 읽으리라

귀 밝은 이 있어 저 춤을 들으리라

마음 열고 있는 이 있어 물처럼 흘러가리라

저들 나무속에 숨겨진 비경을 나 어이 독해하리

잠깐 꿈속을 헤매던

속눈썹 허연 노스님이 땅바닥에 말씀을 던져 놓자

시치미를 뚝 떼고 있던 소나무들

몸 전체가 붓이 되어 가만가만 하늘에 경을 적고 있다

잠 못 드는 비둘기 떼 파닥이며 날아오르다

소나무 주위를 푸르게 푸르게 맴돌고 있다

북한산이 가슴을 열어 다 품고 있는 것을 보고

구름장 하얗게 미소 짓고 소리없이 흐르고 있다

이윽하다

좀 좋은가.

 

- 시집『독종』(2012, 북인)

 

    * 나무 속 결을 따라 신들의 궁전으로 가는 길의 시인은 금강경의 물결, 푸른 붓, 비경秘經, 먹물, 화엄華嚴, 속눈썹 허연 노스님과 같은 시어로 우주의 말씀을 받아쓴다. 여시아문如是我聞의 세계를 펼쳐간다. 우리는 여기서 서양의 철학자 니체가『선악의 저편』에서 말한 ‘문법 구조가 철학을 낳는다’는 말을 기억해 볼 필요가 있다. 그 이론을 더 해석해 보자면 우랄 알타이 언어권과 게르만족이나 이슬람교도의 언어권은 문법 구조가 달라 서로 다른 철학적 사색을 펼칠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를 이어갈 수 있다.

 「우이동솔밭공원」의 화자가 보는 자연경은 확실히 그들의 언어권이 펼친 상징주의 언어와 다르다. 상징주의의 영향 아래에 있었던 보들레르는 앞에서 인용한 시「교감」에서 색채와 소리 속에 용연향, 안식향, 훈향 같은 향기를 섞어 상징의 세계를 펼치고, 이와 달리 시인은 푸른 붓으로 염결 정신을 간직한 선비의 길을 이어 놓고 있다.

  상징의 숲을 통과한 동서양의 시들을 비교해 보는 이러한 작업은 시어에서 특별히 차이를 보인다. 이러한 차이를 구별해 보는 작업은 각각의 시인이 쓴 작품에 대한 이해를 더해 주고 독자의 시야를 넓히는데 도움을 줄 것이라 여겨진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주의 소식을 접하는 일에 재미를 더할 것이다.

  - 홍예영(시인)

 

                                 * 우이동솔밭공원(박제준 님 촬영, 2023.12. 30.)

                                        * 겨울 삼각산(박제준 님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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