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라지에 와서
洪 海 里
물은 칼 같은 산 사이를 칼칼칼 흐르는데
어찌 저리 고웁고 부드럽기만 하냐
고추밭 매운 바람에 나부끼는, 풋풋한
저녁녘 아우라지 처녀의 치맛자락
사람 사는 일이 어우러지는 일 아니랴
거칠게 흐르는 수물인 구절천과
잔잔한 암물인 골지천이 합수하여
한 집을 이루고 드디어 한 몸이 되어
강물도 이렇게 어우러진 두물머리
이곳에 와서 무작정 바라보아라
묻혀 사는 설움도 사람의 삶이요
등지고 사는 세상도 사람의 뜻 아니랴
덧없이 흘러가는 세월의 뒤켠에서
물에 잠겨 일렁이는 저 달빛도
밤물결 이랑마다 삶의 무늬를 짓는데
무엇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우리는
무작정 흐르고 흘러서 어디로 가는 것이랴
아무래도 우리는 물같이는 되지 못하나
하염없이 물결을 바라다보면
흐름 속에 별들도 조을다 가고
저 우주의 무량겁도 바다로 하늘로 흐르는구나
우리가 언제 이곳에 다시 와서 보아도
아우라지는 천년을 순간에 안고 흐르기만 하랴.
-'우이동 시인들'(이생진, 임보, 채희문, 홍해리) 19집
『저 혼자 아닌 것이 어디 있으랴』(1996, 작가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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